[노재형의 전력경제학] 깨끗한 무탄소 전기…좋긴 한데 비용은 누가 치르지?
RE100.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기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지만 현실적으로 무역장벽으로 인식된다. 요즘 전력 산업계와 관련 학계에서는 탄소중립과 RE100 달성 방안을 놓고 논의가 많다. 이런 논의 대부분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아니면 정부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로 마무리된다. 그럴 때마다 ‘돈은 누가 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부도 시민단체도 정치인도 심지어 학자들도 탄소중립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누가 돈을 낼지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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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소중립 비용 요금 반영돼야
가격 경쟁하는 전력시장 필요
지금보다 정교한 시스템 요구
」
탄소중립, 돈 얼마나 들고 누가 부담?
탄소중립에는 돈이 든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도, 원전도 건설해야 하고, 석탄 발전소는 폐쇄하고 수소 발전으로 대체해야 하며, 전기저장장치도 있어야 하고, 송전망도 대폭 확충해야 한다. 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는 망 보강 비용으로 56조5000억원,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기저장장치 보강비용으로 약 4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비중이 증가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런 비용은 더 증가할 것이다. 기술 발전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기술이나 전기저장장치가 저렴해지면 생각보다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여전히 매우 비싼 자원들이고, 이런 자원이 저렴해질 때까지 투자를 미룰 수도 없다.
돈은 당연히 전기사용자가 내야한다. 하지만 사용자에 따라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학 원론에 따르면 특정 재화에 대해 더 많이 지불하고자 하는 사용자가 그 재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만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고, 자원 배분이 최적화될 수 있다. 현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사용자가 무탄소 전기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얼마를 지불하려는지 알 수 없다. 전기요금에 2021년부터 기후환경요금이라는 항목이 추가되긴 했다. 기후환경요금에는 탄소배출권 거래 비용,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이행비용, 석탄발전 저감비용이 포함된다. 이 기후환경요금을 통해 모든 전기사용자가 탄소중립에 소요되는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
지역별로 전기가격 달라야 정상 시장
이렇게 탄소중립 비용을 모든 전기사용자가 분담하는 체제로는 효율적인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앞서 이야기한 경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첫걸음은 한전의 전기요금을 해외와 같이 그린요금과 일반요금으로 구분하고 그린요금에는 탄소중립에 소요된 비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단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용자는 가려낼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낼 의사가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정교한 시스템, 즉 해외 전력시장과 같은 정상적인 전력시장이 필요하다.
정상적 전력시장이란 지역별로 전기 가격이 다르고, 환경비용이 정확하게 반영되며, 전기사용자가 전기공급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장이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전력시장이라면 RE100을 선언한 첨단기술기업은 비수도권에 공장을 지어 고급인력 확보에 돈을 더 쓰는 대신 비수도권의 저렴한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할 것인지, 수도권에 공장을 지어 고급인력 확보에 돈을 덜 쓰는 대신 수도권의 비싼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할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 또한 수도권에서 비싸게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 줄 기업이 있다면 부족한 송전망 등으로 수송이 어려운 비수도권이 아닌 수도권에 발전소를 건설할 것이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자원의 최적 배분이 이루어지게 된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RE100 기업들이 전력시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재생에너지 공급사업자로부터 재생에너지 전기를 살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 기업의 간부는 “총 1만4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RE100 활동을 전개한 가운데, 실제 관심을 보인 곳은 20%였고 그중 계약이 이뤄진 곳은 단 4개사에 불과했다”라고 발표했다. 기업들이 진심으로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할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정부에 의존하는 국민 정서도 문제
효율적인 탄소중립 달성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국민 정서가 아닐까 한다. ‘임금님이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정서는 정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초래하며, 개인의 자립과 사회적 책임감을 약화한다. 정부의 역할은 공공 서비스를 관리하는 것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려다 보면,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공 서비스가 비싸게 되거나 질이 저하될 수 있다.
전력산업에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3% 이내로 유지하기 위한 저장장치 설비를 반영했다. 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비율이 특정 값 이하여야 하는지, 왜 전력부문 탄소배출량이 특정 양 이하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현재 계획하고 있는 전기저장장치 용량보다 더 적은 용량으로 그리고 더 적은 송전망 투자로, 궁극적으로 더 적은 비용으로 탄소중립에 이를 수 있다. 효율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탄소중립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정부 주도가 아니라, 개인이 그리고 기업이 합리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탄소중립에는 돈이 든다. 전기사용자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모든 전기사용자가 탄소중립 비용을 분담하는, 그나마도 다 부담하지 않는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전 부채가 200조원을 넘어섰지만 기후환경요금이 대폭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어렵다. 현재의 전기사용자가 지불하지 않은 비용은 쌓여 갈 것이고 후세대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대의명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실현돼야 한다.
노재형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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