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출생률 세계 꼴찌 한국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
늦은 밤 휴대전화 메신저가 연신 울린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녹색학부모회 임원과 각 학년 대표가 모인 채팅방이다. ‘대한민국 엄마라면 피할 수 없다’는 바로 그 녹색학부모회, 맞다. 학기 중 매일 아이들의 등굣길 교통안전 지도 봉사를 하는 단체 말이다. 아이가 입학하면서 자동 가입됐는데, 어쩌다 올해 학년 대표가 되어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이날 대화 주제는 ‘녹색 봉사 일을 앞두고 갑자기 참여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생길 경우 각 반 대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녹색 봉사는 반별로 돌아가며 진행하는데, 한 학기 정도 지나면 전학생 등이 생기면서 봉사자 결원도 생기는 것이다. 특히 이날은 결원이 2명 이상인 반이 있어 이슈가 됐다. 고학년 학부모들의 경험담과 운영 원칙 등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오간 뒤 사안은 정리가 됐다.
정말이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가 입학하기 전엔 전국의 수많은 학부모가 매일 학교 주변 곳곳에서 교통안전 지도 봉사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녹색학부모회 일원이 된 뒤에야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등굣길 건널목에 깃발을 들고 서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한 명의 사회구성원이 된 건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양육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남편과 출근 일정을 조율하며 어렵게 첫 봉사를 하고 나서는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다. ‘학부모는 이렇게 강제 동원해도 되는 존재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외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월급쟁이로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것 외에 사회에 기여하거나 봉사한 일이 있었나?’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 적은 있어도, 내가 사는 지역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쓴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일 년에 2번 하는 작은 봉사지만, 아이와 가족이 사는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양육자가 된 뒤 다양한 편견에 부닥치곤 한다. ‘제 아이밖에 모르는 엄마’, ‘자기 욕심에 아이 학원 뺑뺑이 돌리는 엄마’, ‘아이 팽개치고 일하러 나가는 엄마’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양육자들은 그런 편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와 아이가 살아갈 사회를 위해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출생률 세계 꼴찌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절망적인 전망에 흔들리지 않고 이미 태어난 아이를 잘 키우려 애쓰는 평범한 양육자.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드는 이들 아닐까?
정선언 페어런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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