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호기심의 쓸모
“그러면, 네 연구의 쓸모는 뭔데?” 얼마 전 방문했던 수학계 석학의 일침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연구에 대해 물었다. 이 분야의 효용은 무엇인가. 인류가 전통적으로 궁금해하던, 예를 들면 공간이나 대칭 따위에 어떤 직관을 주는가. 일주일간의 괴롭힘 끝에 그가 던진 말이었다.
그의 반문으로 나의 머리엔 전류가 흘렀다. 여러 사람의 금언이 하나의 회로에서 불을 밝혔다. 쓸모는 과학 발전의 동력이 아니라는 조언들. 잉태와 성장의 자양분은 호기심이다. 그의 연구도, 나의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창조하는 수학에는 신기한 질문이 가득했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걸로 충분했다.
미국의 교육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1866~1959) 역시 과학에서 호기심의 역할을 강조했다. 의대 설립을 원하던 거상 뱀버거 가문은, 그의 설득으로 순수학문 연구소인 고등연구소(IAS)를 세웠다. 지식 자체로서의 가치를 그는 설파했다. 이론 물리학자 맥스웰의 묘연한 방정식이 무선 통신을 출현시켰고, 자격 미달 의대생 에를리히의 끈질긴 관찰이 세균학을 탄생시켰음을. 플렉스너에 감동한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괴델 등의 과학자가 이 신생 연구소에 합류했다.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이 이름들로, 미국은 과학 최강대국이 되었다.
인간다움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수단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한 철학자의 간절한 명령이다. 선전이나 미화의 수단이라면, 예술가는 인공지능에 뒤처질지도 모른다. 상업화와 쓸모의 잣대에 내몰리면, 기초과학에 혁신은 없을 것이다. 예술은 내면 탐구의 표현이고, 과학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의 산물이다. 덕분에 우리는 숨 막히게 아름답고 잔인할 정도로 강력한 문명을 구축하였다. 플렉스너의 표현대로 ‘인간 정신의 날개’는 쓸모의 틀 안에 가둘 수 없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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