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꿈 이룬다? 현실에선 도시괴담”

홍지유 2024. 7. 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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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은 “과제로 글을 쓰면서 무언가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고 ‘재밌는 걸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가가 됐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조예은(31)은 2016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으로 데뷔했다. 사실 그 전까지 공모전은커녕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그는 3학년 교양 수업 때 과제로 짤막한 ‘좀비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소설 주인공은 대입 수능 직후 고사장을 나서자마자 좀비로 뒤덮인 세상을 마주한다. 이 과제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인턴 공고를 뒤적이던” 평범한 대학생은 과제로 소설을 쓴지 1년 만에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잇따라 수상했다. 27살에 쓴 판타지 스릴러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는 10만부 베스트셀러가 됐다. 신작 장편 『입속 지느러미』를 펴낸 그를 최근 만났다.

Q : 과제로 소설을 쓰기 전까지 글에 관심이 없었다던데.
A :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때가 23살이었는데, 글쓰기가 재밌다고 처음 생각했다. 얼마 후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Q : 첫 소설 후 데뷔까지 1년 남짓 걸렸다.
A : “구직을 준비했다. 블로그에 공연 리뷰를 쓰다가 글을 더 써보고 싶어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 응모했다. 그때까지 전업 작가는생각도 못 했다. ‘뭔가 재밌다’고 오랜만에 생각했는데 그게 글쓰기였다. ‘재밌는 걸 계속해야겠다’ 정도 생각이었다.”

Q : 『칵테일, 러브 좀비』의 인기 비결은.
A : “단편 4편을 모은 책이잖나. 가볍게,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인 관계의 가스라이팅이나 환경 문제 등 2030 관심사를 다뤘는데, 빙빙 돌리지 않고 쉽게 썼다. 그때는 돌려 말하는 게 싫었다.”

『입속 지느러미』는 작곡가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된 취업준비생 선형이 인어 ‘피니’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배경은 청계천 지하 수족관이다. 소설 속에선 끝없이 비가 내리는데, 읽다 보면 어디선가 비린내 나는 느낌마저 든다. 소셜미디어(SNS)에서 검색하면 ‘장마철에 읽기 좋은 소설’이란 태그가 달렸다.

Q : ‘물’의 이미지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A : “바다를 좋아한다. 본가가 서해안 근처다. 내게 바다는 꾸덕하고 까만 바다, 서해다. 그러다 보니 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쓰게 된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바다 괴물 이야기를 좋아했다.”

Q : 선형이 인어 ‘피니’를 아끼는 마음이 사랑일까.
A : “선형은 작곡가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잖나. 피니는 미완의 꿈을 완성할 열쇠다. 피니를 사랑하는 건 결국 자신의 꿈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다. 사랑하는 마음이 이기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꼭 쌍방의 아름다운 교류는 아니잖나.”

Q :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
A : “입속 지느러미 하면 혀를 떠올릴 거다. 피니는 선형의 돌봄으로 점차 잘렸던 혀를 회복한다. 그 모습을 제목으로 삼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느러미는 생각보다 딱딱하고 뾰족하다고 한다. 그러니 입속에 있다면 입안이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반전의 의미를 넣고 싶었다.”

Q : ‘인어’ 이야기인데 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A : “맞다. 많은 청년이 꿈을 이루려고 서울로 오지만, 그중 꿈을 이루는 경우는 극소수다. 청년이 꿈을 이룬다는 얘기가 도시 괴담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도시는 ‘꿈의 무덤’ 같다.”

Q : 소설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A : “재미다. 재미가 전부는 아니지만. 콘텐트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은 재미라고 생각한다.”

Q : 어떤 게 재밌는 소설일까.
A : “자극적인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고 그걸 재밌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캐릭터의 심리 변화에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플러스로 적재적소에서 사건이 터지는 소설, 그렇게 여러 요소가 잘 맞물리는 게 재밌는 소설 같다.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다’는 게 전제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말 정말 운이 좋았다” “인터뷰하는 것도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지만, 재밌는 소설에 관해 말할 땐 막힘이 없었다. 작가로서 꿈을 묻자 “연령대와 성별을 초월하는 압도적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웃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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