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김건희 왕국'이란 걸 보여준 사건

오태규 2024. 7. 2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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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황제수사, 임성근 구명 배후설, 전당대회 개입 논란... 엄중한 책임 물어야

[오태규 기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구절입니다. 국가의 정체를 정의한 앞 구절이 1항이고, 국민이 권력의 원천임을 밝힌 뒤 구절이 2항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11월, 독일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독일제국이 붕괴했습니다. 길고 혹독했던 광란의 전쟁도 끝났습니다. 이듬해 독일제국을 대신해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했고, 이때 당대에서 가장 선진적인 내용을 담은 헌법이 제정됐습니다.

"독일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이마르헌법 제1조입니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헌법은 세계사에서 가장 선진적인 내용을 이어받았습니다. 만방에 충분히 내놓고 자랑할 만합니다.

반면, 대한민국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웃 국가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의 패전 뒤 제정된, 이른바 평화헌법의 제1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
 
한 문장 안에 천황과 일본 국민이란 단어가 같이 등장하지만, 천황과 일본 국민 중 누가 주인이고 우위에 있는지 애매모호합니다. 문장 구조로 볼 때 오히려 천황이 우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아직도 2차대전 전의 천황 군주제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헌법 조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더욱 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천황 관련 보도입니다. 21세기에도 천황 비판 보도는 여전히 성역이고, 그의 활동을 보도할 때도 천황에 관해서는 일반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높임말을 씁니다.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이것은 2차대전 전의 일본제국 헌법 제1조입니다. 신구 두 헌법의 조항과 일본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비교해 보면, 일본 사람들이 헌법은 바뀌었으되 현인신(現人神) 천황을 떠받들었던 일본제국 헌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더욱 빛나고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투쟁으로 쟁취한 헌법 제1조

 
▲ 윤석열 대통령 부부, 6·25 참전영웅 초청 위로연 참석 김건희 여사가 6월 25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6·25 참전영웅 초청 위로연'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훌륭하다고 해서, 그 조항이 곧바로 현실에서 작동했던 건 아닙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격언이 말해 주듯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시민이 투쟁과 노력으로 쟁취할 때까지는 '잠자고 있는 문장'에 불과했습니다. 말로만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재민이었지 주권과 권력을 독재자 일인이 독차지했던 시절이 매우 길었습니다. 민주 시민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헌법 1조의 의미를 쟁취하지 못했다면, 지금도 한국 시민은 '말로만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헌법 제1조의 의미를 전 국민이 각성하고, 확인하고, 실천한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일어난 촛불 시위입니다. 그때 시위 현장에서 헌법 제1조의 구절을 반복하는 내용의 민중가요 '헌법 제1조'(윤민석 작사·작곡)가 촛불 시위의 주제가처럼 불렸습니다. 시민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에서, 주권재민 국가에서 절대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사문화 위기에 몰린 민주 공화제·주권재민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촛불혁명으로부터 7년여 만에, 윤석열 검사 정권이 들어선 지 불과 2년 만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다시 '종잇장의 글씨'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가장 선진적인 내용을 자랑하던 바이마르헌법 아래서 아돌프 히틀러라는 괴물이 태어났듯이, 대한민국 헌법 아래에서 탄생한 윤 정권이 민주 공화제와 주권재민을 짓밟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상징하는 행위가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월권과 전횡, 그리고 성역화라고 봅니다. 윤 정권 집권 초기부터 '윤 대통령은 껍데기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한테서 나온다'라는 풍설이 많았지만, 지금은 소문의 단계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점선이 아니라 실선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씨가 최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해, 전직 대통령도 누리지 못한 검찰의 '황제 수사'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김건희 왕국'이라는 걸 이것보다 잘 보여주는 사건은 없을 겁니다. 그는 법 앞에 예외이고 특권이고 성역이라는 걸, 이번 황제 수사를 통해 만천하에 확인해 줬습니다. 윤석열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일본인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황과 같은 존재임을 과시했습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뒤흔든 명품 가방 수수 사과와 관련한 문자 공개,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책임자 축소·왜곡 사건도 '일인자 김건희씨'의 존재를 확인해 줬습니다.

김씨가 여당 대표 선거전 와중에 대표 선거에 출마한 한동훈씨와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명백한 당무 개입입니다. 더욱 심각한 일은 사적 존재인 대통령 부인이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과 총선 운동 기간에 이런 문자를 수차례나 주고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공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개인이 사통으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농단입니다. 상대 후보들로부터 김씨의 문자를 무시했다고 집중 공격을 받은 한씨가 당시 그 문자가 공개됐으면 야당이 국정농단이라고 공격했을 것이라고 반박한 것에서도, 그 행위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채 상병 사망사건 책임자 봐주기는 어떻습니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 이종호씨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에서 '대통령(VIP)'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를 하겠다고 했는데,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허풍이라고 토를 달면서도 그 VIP가 바로 김건희씨라는 걸 이실직고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VIP라고 부르는 걸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관가에서 대통령을 그렇게 부른다는 건 잘 압니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을 VIP라고 부른다는 건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VIP1 김건희씨, VIP2 윤 대통령'이라는 항간의 얘기가 허언이 아니라는 실토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최고 권력자'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
 
▲ 워싱턴DC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월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은 윤석열이지 그의 부인 김씨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 노릇은 선출되지 않은 사람, 즉 대통령 부인이 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가장 시급하게 할 일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도 않았으면서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서 대통령 행세하는 김씨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선출되지 않았으면서 선출된 권력보다 더 큰 권력을 부리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문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는 일이자 선출되지 않았으면서 멋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판사·검사를 비롯한 사법 권력과 기득권 카르텔 권력에도 준엄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시민의 힘으로 쟁취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사문화의 위기에서 구하는 길입니다. 대한민국을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으로 우뚝 세우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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