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었는데 임신, 늙은 수녀의 충격적 대답
[김동근 기자]
(※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삶의 방향성은 내가 직접 조정하며 가는 것이 맞을까? 정말 힘들거나 미래가 불확실할 때 우리는 누군가를 찾는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 답을 찾지 못할 때나, 정말 너무 힘든 상황이 닥쳐오면 우리는 신을 찾는다. 예수나 부처 등 다양한 종교들이 그 힘든 상황을 위로해 준다. 마치 신의 뜻이 있었던 것처럼 그 모든 불행과 행복이 신의 뜻이었다고 믿는다.
종교가 주는 힘은 크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위로를 받고, 힘든 상황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종교는 희망을 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동시에 종교는 우리를 정적인 상태에 머무르게 할 수도 있다. 종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의 정적인 특성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수동적인 태도를 유도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는 과연 신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포 영화다.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가면서 한 가톨릭 시설에 가게 된 주인공 세실리아(시드니 스위니)가 겪는 일이 스산하게 담겼다. 이매큘레이트라는 단어는 '무결점의', '순결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는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세실리아의 경험을 통해 신의 뜻을 탐구한다.
▲ 영화 <이매큘레이트> 장면 |
ⓒ (주)디스테이션 |
세실리아는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 젊은 나이에 가톨릭의 수녀가 되기로 결정하고 종교에 귀의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래서 더욱 그녀는 신을 믿고 가톨릭을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새롭게 만나게 되는 수녀들과 신부들을 전적으로 믿는다. 세실리아가 종교적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그녀의 어린 시절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강한 신앙심 때문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녀에겐 남아있는 가족이 없었고, 오직 신에 의지하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세실리아가 처음 이탈리아의 종교 시설로 갔을 때, 이탈리아어가 서툰 그녀지만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곳에 갔는지를 영화는 초반의 장면들로 보여준다. 종교 시설의 스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세실리아의 미소에 조금 밝아진다. 세실리아의 심리적 상태는 그가 가진 굳건한 믿음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잘못될 리 없는 신과 절대적 선인 수녀와 신부들을 믿고 있다. 자신에게 찾아올 무서운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어떤 일이 찾아오든 그녀가 그것을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내 그 기대는 바뀌게 된다. 그녀의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몸이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면서다.
세실리아는 그녀가 믿는 신부의 추천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게 된다. 오래된 초음파 기계 앞에 누워 진료를 받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이 묻어나 있지만, 주변의 공기는 더욱 차가워진다.
▲ 영화 <이매큘레이트> 장면 |
ⓒ (주)디스테이션 |
세실리아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런 성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했다는 상황은 무척 공포스럽다. 하지만 세실리아의 주변 인물들은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고 말한다. 영화는 그것이 마치 진짜 신의 뜻인 것처럼 이야기를 몰고 간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고조될 때, 그 수도원의 나이 든 수녀에게 세실리아가 왜 자신이 임신했는지 묻는다. 그 수녀의 답은 충격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세실리아는 과연 그것이 신의 뜻인지 고민하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과연 진짜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그런 애매한 상황 속에 세실리아를 밀어 넣고 관객에게 기괴한 서스펜스를 전달한다.
▲ 영화 <이매큘레이트> 장면 |
ⓒ (주)디스테이션 |
영화는 늙은 수녀의 대답 이후 달라지는 세실리아를 보여준다. 후반부의 세실리아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다. 그녀는 신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건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임신해 배가 불러오는 상황에서도 세실리아는 자신의 의지를 점점 강력하게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건 이상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공포심에 의해 발생한 본능 같은 것이지만, 세실리아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실행이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속 기도원은 이상한 믿음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들의 잘못된 믿음은 깨뜨려야 할 장애물이 된다. 세실리아는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을 통해 신의 뜻을 만들어간다. 무언가 일어난 그 일 모두가 신의 뜻이 될 수 있다. 여전히 신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의 뜻이 될 수 있다면, 세실리아가 의지를 가지게 된 그 상황 자체도 신의 뜻이 될 수 있다.
세실리아가 보여주는 모습은 결국은 자신의 의지로 하는 일이 신의 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실리아가 수도원의 괴인들에게 맞서는 행동이 종교적으로 올바르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반항이 아니라,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맞서는 용감한 도전이다. 그녀의 의지는 종교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한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는 기본적으로 공포영화로서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약했다. 공포 요소들이 충분히 무서운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들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공포 영화로서의 기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강렬한 공포 효과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영화는 세실리아가 자신만의 믿음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보여준다. 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이 역할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녀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강렬한 연기는 세실리아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잘 담아냈다.
감독 마이클 모한은 과거 작품인 <깊은 관계> 등에서 보여준 섬세한 연출 스타일을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갔다. 그의 연출은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한다. <이매큘레이트>에서도 모한 감독의 특유의 섬세함과 치밀한 연출이 돋보인다.
▲ 영화 <이매큘레이트> 포스터 |
ⓒ (주)디스테이션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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