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 발단 된 ‘정치의 감성화’ [신율의 정치 읽기]

2024. 7. 2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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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노린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를 흘리며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유세 현장을 떠나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차기 대선 공화당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인 트럼프가 7월 13일(현지 시간) 괴한에 의해 피격당했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피격당해 목숨을 잃은 경우는 총 4번이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부상당한 경우까지 합하면 총 11건이다.

트럼프 피격과 관련, 두 종류의 역설이 발견된다.

하나는 총기 규제 관련 역설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인물이다. 20세 범인이 총을 갖고 정치인에 테러를 벌일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트럼프도 역할을 한 셈이다.

또 다른 ‘역설’은 테러 원인과 관계 있다. 이번 테러의 원인은 ‘정서적 양극화’다. ‘정서적 양극화’는 정치를 ‘감성화’시킨 결과물이다. 정치가 감성화된 이유는 정치적 ‘팬덤’ 발생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팬덤을 가진 정치인은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정도다. 두 정치인은 미국에서 SNS를 정치에 가장 잘 활용한다. SNS 활용 정도와 정치적 팬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치인의 SNS 활용은 일반 유권자가 해당 정치인에게 ‘개인적 친밀감’을 갖게 만든다. 일반 유권자가 특정 정치인에 ‘개인적 친밀감’을 갖게 되면, 이후 ‘친밀감’은 ‘추종’으로 진화한다.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것이 바로 ‘팬덤’이다. 이 단계까지 가면,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에 반대하는 상대 정치인 혹은 정당을 ‘타도’ 혹은 ‘제거’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정치적 증오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역설은 여기서 발생한다. 정치인은 대부분 팬덤을 반긴다. 팬덤은 전체 유권자 수와 비교해 결코 다수라고 할 수 없지만, 이들 팬덤은 ‘큰 목소리’를 이용해 여론을 창출하고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인은 팬덤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 수 있다. 지지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팬덤이 주는 이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팬덤을 가진 정치인은, 직접 나서지 않고도 팬덤을 이용해 정치적 반대자를 ‘제압’할 수 있다.

당연히 정치인 입장에서는 팬덤을 반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처음에는 팬덤이 정치인을 추종하지만 나중에는 팬덤이 정치인 행동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정치인이 팬덤을 이용하다 나중에는 정치인이 팬덤 눈치를 보며 이들에게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정치인은 팬덤이 원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자극을 계속 주면 자극을 느끼지 못하듯, 팬덤도 공격 대상에 대한 공격 수위를 점점 높여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공격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때 ‘당하는 상대방’ 역시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악마화’하는 대상을 ‘악마’로 생각하며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일. 이는 극단적인 ‘정서적 양극화’를 발생시켜, 각종 정치적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결국 이번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테러는 ‘정치의 감성화’, 그리고 ‘정서적 양극화’의 산물인 셈이다. 정치의 감성화 발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SNS 활용이 제공했다. 즉, 자신이 만든 ‘정치의 감성화’로 인해 자신이 테러를 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정치의 감성화와 정서적 양극화가 상당 수준 진행 중이라는 점은, 탄핵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테러도 발생한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탄핵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정치인 테러 발생 빈도수가 미국보다 많다.

우리나라에서 ‘탄핵’이라는 극히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정치적 용어는, 이제 일상용어가 돼버렸다. 검사 탄핵도 낯설지 않고, 대통령 탄핵 주장도 일상이 돼버렸다.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는 이유가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만큼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가 많다고 판단해, 탄핵에 국민이 호응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탄핵 주장에 대한 ‘역풍’이 없기 때문에, 그런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 판단에 동조하기 힘들다.

지난 7월 11일 발표된 NBS 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한국리서치·코리아리서치가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은 26%에 불과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정권 집권 5년 차 지지율과 비슷할 정도로 저조한 수준이다. 문제는 민주당 지지율이다. 해당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7%였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하다. 7월 13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여론조사(7월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27%, 민주당 지지율은 30%였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것은 분명하지만, 여론조사 오차범위를 생각하면 민주당 지지율도 대통령 지지율보다 높다고 볼 수 없다. 이런 결과는,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고 민주당이 마구 공격할 입장은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뿐 아니다. 민주당의 각종 탄핵 주장에 여론이 호응한다면,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높게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높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열풍이 한창 불었을 당시인 2016년 12월의 민주당 지지율은 40%를 웃돈 반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15% 정도였다(한국갤럽 기준).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탄핵 주장에 국민적 호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정당 지지율에서 오히려 민주당이 뒤지고 있으니, 민주당이 생각하는 탄핵 주장에 대한 ‘자신감의 근거’는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의미다.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은 여론 호응은 고사하고 오히려 일종의 ‘탄핵 역풍’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자꾸 각종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면, 정서적 양극화는 더욱 깊어진다. 민주당이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담당하려 한다면, 이런 식의 정치적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민주당 의원들은 탄핵이 ‘권리’라고 주장한다. 행정부 ‘횡포’에 대항하는 자신들의 당당한 수단이라는 것. 맞는 말이다. 대신 민주당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두고 뭐라 해서는 안 된다. ‘탄핵’이 행정부 ‘독재’를 제어하기 위한 입법부의 수단이라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역시 ‘의회 독재’를 막기 위해 행정부가 갖고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정당한 수단 행사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권리 행사를 정당화한다면, 이는 극단적인 ‘내로남불’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민족주의의 대두와 정치의 감성화다. 과거 20세기 초반에도 비슷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이런 경향은 결국 대대적인 참사를 빚어낸다. 당연히 이런 경향은 막아야 한다. 막지 못하면 세계는 또 한 번 극단이 지배하는 혼란에 빠질지 모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9호 (2024.07.24~2024.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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