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스러운 연기로 할리우드 '해적 영화' 저주 푼 배우
[양형석 기자]
드라마에 대본, 연극에 희곡이 필요하듯 극영화에는 반드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시나리오는 감독이나 전문 작가가 하고 싶은 소재로 시놉시스를 만든 후 거기에 살을 붙이고 여러 번의 수정과 퇴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하게 된다(물론 <아가씨>,<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처럼 이 과정을 함께 만드는 감독과 작가도 있다). 소설이나 만화, 웹툰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시나리오를 완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문학작품이 아닌 조금 독특한 곳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기도 한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툼 레이더> 시리즈, <슈퍼소닉> 시리즈, <프레디의 피자가게> 등은 게임을 원작으로 만들어 성공한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2007년에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5편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3편의 리부트 시리즈가 만들어졌던 <트랜스포머>는 인기변신 완구시리즈를 원작으로 영화에 맞게 재구성해 만든 작품이다.
▲ <캐리비안의 해적>은 시리즈 5편을 합쳐 45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 월트디즈니코리아(주) |
레골라스로 일약 센세이션 일으켰던 배우
1977년 영국 켄트주 켄터베리에서 태어난 올랜도 블룸은 학창시절부터 연극에 출연했고 독립영화와 연극, TV드라마 등을 통해 수려한 외모와 안정된 연기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국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블룸은 1999년 피터 잭슨 감독에게 발탁돼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서 요정 레골라스를 연기하게 됐다.
<반지의 제왕> 개봉 이후 일개 신예배우에 불과했던 블룸의 인지도는 몰라보게 올라갔다. 만약 영화 한 편이었다면 주목을 받는데 한계가 있었겠지만 <반지의 제왕>은 3년 동안 1년에 한 편씩 개봉하면서 29억17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게다가 블룸이 연기한 '요정' 레골라스는 눈부신 비주얼과 함께 활을 이용한 화려한 액션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의 마지막 이야기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개봉하기 5개월 전인 2003년 7월엔 블룸의 신작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가 개봉했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에서 전설적인 해적 빌 터너의 아들 윌리엄 터너를 연기한 블룸은 조니 뎁, 키이라 나이틀리와 이야기를 이끌었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는 1억4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6억54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2004년 <트로이>에서 헥토르(에릭 바나 분)의 동생 파리스를 연기한 블룸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비롯해 <킹덤 오브 헤븐>,<삼총사> 등 주로 고대 또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 강세를 보였다. 반면에 현대극 또는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많은 영국출신 배우들이 현지에서의 연극배우 경험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진출 후에도 탄탄한 연기력을 보이는 것과는 조금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블룸은 독립영화 <굿닥터>와 2013년 칸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스릴러 영화 <줄루-범죄도시> 등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레골라스로만 블룸을 기억했다. 이에 피터 잭슨 감독은 2012년부터 3부작으로 제작된 <호빗> 시리즈에서도 블룸을 레골라스로 출연시켰다(원작소설에는 레골라스가 나오지 않는다). 블룸은 데뷔 초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졌지만 작년에도 <그란 투리스모>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주인공 잭 스패로우 선장은 물이 새 침몰하는 배를 타고 매우 코믹하게 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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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리우드에서 해적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일종의 금기나 다름 없었다. 1986년에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해적>은 4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흥행 164만 달러라는 '재앙'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여기에 1995년에 개봉한 레니 할린 감독, 지나 데이비스 주연의 <컷스로트 아일랜드> 역시 9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0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제작사가 파산했다.
이 때문에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를 원작으로 만든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 역시 조니 뎁, 올랜도 블룸, 키이라 나이틀리 같은 스타배우들이 출연한다 해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역대 해양 액션 어드벤처 영화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는 제작비의 4.67배에 달하는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인기 시리즈의 순조로운 시작을 알렸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에서는 선역과 악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캐릭터들이 뛰어난 개성과 매력을 선보이지만 영화의 중심은 단연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 '선장'이었다. 잭 스패로우는 마치 '기복 심한 좌완 강속구 투수'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으로 적들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당황하게 만들면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조니 뎁이 5편을 끝으로 하차를 선언하자 <캐리비안의 해적> 6편 제작이 난항에 빠졌을 정도.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는 좋은 OST로도 유명하다. 당초 OST는 <라이온 킹>과 <더 록>, <글래디에이터>, <다크나이트> 등의 음악을 맡았던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스 짐머가 <라스트 사무라이>의 OST를 맡으면서 참여가 힘들어지자 제자 클라우스 바델트가 음악을 담당했다. 한스 짐머가 빠지면서 우려도 있었지만 메인테마 < He's Pirate >를 비롯해 바델트의 OST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를 만든 고어 버빈스키 감독은 뮤직비디오와 광고 연출을 거쳐 1997년 <마우스 헌트>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2002년 할리우드판 <링>을 연출한 버빈스키 감독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캐리비안의 해적> 오리지널 트릴로지를 연출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2011년에는 애니메이션 <랭고>를 만들어 픽사의 <카2>와 드림웍스의 <쿵푸팬더2>를 제치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 키이라 나이틀리는 2003년 <캐리비안의 해적>과 <러브 액추얼리>를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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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아미달라 여왕(나탈리 포트만 분)의 카케무샤(위장용 대역) 역할을 한 시녀 사베를 연기했던 나이틀리는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에서 엘리자베스 스완 역을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엘리자베스는 귀족 출신임에도 어린 시절부터 해적에 대한 동경으로 해적노래를 부를 정도로 모험심이 넘치고 자유분방한 여인으로 해적의 아들 윌 터너(올랜도 블룸 분)와 사랑에 빠진다.
제프리 러시가 연기한 블랙 펄의 선장 빅터 바르보사는 잭 스패로우의 라이벌로 영화의 모든 시리즈에 빠지지 않고 개근했다. 1편에서는 메인빌런 포지션으로 잔인하고 비겁한 악당 역할에 충실하지만 2편부터는 필요에 따라 잭 스패로우와 콤비로 활약하며 '반전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바르보사는 스패로우와 이름이 같은 원숭이 잭을 반려동물로 키우는데 잭 역시 개그캐릭터로서 전 시리즈에 걸쳐 쏠쏠하게 활약한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에서는 출연 당시 조·단역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스타로 성장한 배우가 블랙 펄과 인터셉터의 선원 안나마리아 역으로 출연했다. 바로 <아바타> 시리즈의 네이터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어벤져스> 시리즈의 가모라로 유명한 조 샐다나가 그 주인공이다. 안나마리아는 스패로우에게 배를 약탈 당했는데 영화 초반 등장하자마자 침몰하는 배가 바로 스패로우가 안나마리아에게 '허락 받지 않고 빌린'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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