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술 심장서 확인하는 K아트의 힘

손영옥 2024. 7. 2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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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이미래·조민석, 런던서 각각 대형 개인전

K-아트의 위력이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양혜규(53), 이미래(36), 조민석(58) 등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 국제적 검증대를 통과한 한국인들의 전시가 유럽 미술의 중심 영국 런던에서 올여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선보인 K-아트가 순회전 형식 단체전이었다면 올해 유럽에서 펼쳐지는 무대는 개인전 형식이라는 점에서 K-아티스트의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23일 문화계에 따르면 양혜규 작가는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10월 9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개인전 ‘윤년’을 연다. 헤이워드갤러리는 템스강 남쪽 강변 복합예술센터 사우스뱅크센터 내 공공미술관이다. 양혜규는 여기서 두 차례 단체전에 참여한 적이 있으나 개인전은 처음이다. 테이트모던과 함께 영국의 양대 현대미술 기관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한국 작가가 개인전을 하는 것은 이불 작가에 이어 두 번째다.

양혜규 작가의 얼굴과 ‘우기청호(雨奇晴好)’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교수이기도 한 양혜규는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해 ‘노마드 작가’로 통한다. 빨래 건조대와 방울 등 산업제품을 재료로 가져와 모더니즘과 민속 전통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치 작업을 해왔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하며 세계 무대에 신고식을 했다. 2018년 독일 쾰른 루트비히미술관 개인전 이후 최대 규모인 이번 런던 개인전에서는 ‘소리나는 조각’, ‘중간 유형’, ‘의상 동차’, ‘황홀망’ 등 대표 연작을 선보인다.

이미래 작가의 얼굴과 뉴욕 뉴뮤지엄 ‘검은 태양’ 전시 전경. 뉴뮤지엄 제공


이미래는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모던의 상징적 장소인 터바인홀에서 개인전을 한다. 테이트모던이 한국의 현대차 후원을 받아 매년 작가 한 명을 선정해 전시를 열어주는 ‘현대차 커미션’ 작가에 선정된 것이다. 아파트 10층 높이 천장을 자랑하는 터바인홀에서의 전시 기회는 지금까지 루이스 부르주아, 올라푸르 엘리아손, 애니시 커푸어, 아이웨이웨이, 엘 아나추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에게 돌아갔다. 기계 장치를 활용해 유기체나 생물처럼 작동하는 설치 작품으로 주목받았지만,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되면서 세계무대에 갓 신고식을 한 신예에게는 파격적인 기회다. 이미래는 여세를 몰아 지난해 미술계 스타의 산실로 통하는 미국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개인전을 했다.

조민석 건축가의 얼굴과 켄싱턴 가든의 ‘서펀타인 파빌리온’. 매스스터디 제공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황금사자상을 받은 건축가 조민석 매스스터디 대표는 6월 초부터 런던의 영국 왕실 공원인 켄싱턴 가든 내에 ‘서펀타인 파빌리온’을 선보이고 있다. 서펀타인 파빌리온은 서펀타인 갤러리가 지난 2000 년부터 매년 영국에서 건축해본 적 없는 뛰어난 건축가를 선정해 한시적인 건축물(파빌리온)을 설치하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자하 하디드, 페터 춤토르, 렘 콜하스 등 유명 건축가들이 거쳐 갔다. 또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건축가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설계 기회가 온 것은 처음이다. 조 대표가 ‘군도의 여백(Archipelago Void)’이라 이름 붙인 파빌리온은 강당, 갤러리, 도서관, 티 하우스, 플레이 타워 등 다섯 개의 섬과 같은 구조물로 이뤄졌고 가운데에 여백의 공간이 있다. 그래서 마당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구조는 한옥에서 영감을 받았다. 10월 27일까지.

전소정(42) 작가는 이달 테이트모던이 시즌 별로 한 명의 영상 작가를 초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테이트필름에 참여했다. 전 작가는 내년 9월에는 런던의 비영리미술공간 더쇼룸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미술계 등용문인 더쇼룸에서는 터너상을 받은 로렌스 아부함단 등이 전시를 했다.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은 상업 갤러리에서도 이어져 타데우스 로팍 런던 지점에서는 올가을 정희민(37)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1983년 문을 연 타데우스 로팍은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소속된 유명 갤러리다. 한국 작가 개인전은 이불 이후 처음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영국은 유럽에서 유일한 영어권 국가라 미주 지역에서 유럽 미술을 접하기 위해 모여드는 미술시장의 중심이자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디아스포라 미술 등 새로운 담론이 생성되는 곳”이라며 “영국에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상당한 의미와 파급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홍콩에서 서울로 옮겨오면서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사를 알리는 영문 작업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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