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엘리트 탈출 늘었다?…일반주민은 못 넘는 '탈북의 진실'
정부가 최근 언론 홍보와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통해 '고위급 탈북 러시'를 대대적으로 부각하는 가운데 정작 일반 북한 주민들의 탈북은 급격히 감소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엘리트 탈북민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처럼 전체 탈북자 수가 줄었기 때문인데, 정부가 이는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입국한 탈북민은 모두 196명이다. 통일부는 지난 1월 브리핑에서 "이 중 엘리트 계층이 10여명”이라며 “2017년 이후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해 11월 망명한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52)의 소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군 당국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지난 18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이 전 참사의 탈북 소식을 알리며 대북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정부가 간과하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중앙일보가 23일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엘리트 계층 탈북민의 수는 11명 내외다. 통일부가 이를 10여명으로 설명하며 6년 만에 최대치라고 밝힌 셈인데, 실제로는 2019년 탈북한 엘리트 계층도 10명 내외로 파악됐다. 소식통은 "2019년에 입국한 10명 내외가 모두 엘리트 탈북민이라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는 엘리트 탈북민 세 가족이 들어온 것"이라며 "지난해 입국한 11명 내외 역시 두세 가족이 들어온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 사이 국내에 입국한 북한 일반 주민 탈북 사례는 현저히 줄었다. 2019년 1047명에서 지난해 196명으로 급감했다. 정부는 고위급의 탈북 자체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숫자는 비슷한 수준이고 정확하게는 국내 입국 탈북민 중 엘리트 계층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이다.(2019년 0.95%→2023년 5.6%)
이는 기본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및 이후 이어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체제 단속으로 일반 주민의 탈북은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탈북에도 양극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 정부는 엘리트 탈북 증가만 강조할 뿐 이런 배경은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엘리트 탈북'과 관련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도 탈북민 보호·정착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통일부와 국정원이 '탈북민의 신변 안전'을 이유로 엘리트 탈북민 입국과 관련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 정부가 띄우는 엘리트 계층 탈북민은 여건 측면에서 일반 주민보다 상대적으로 탈북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북한 중앙의 통제가 덜한 해외에서 탈북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북한은 본토에서 주민의 탈북을 막기 위해 북·중 국경 지역 일대에 철책을 설치했고, 일부 지역에선 고압선을 설치하거나 지뢰까지 매설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일반 주민의 탈북은 당분간 코로나19 봉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이나 공관원, 유학생 등 북한 내에서 성분과 토대가 좋고 돈을 가진 특권층이 탈북 과정에서조차 일종의 특혜를 누리는 셈이다. 고위급 탈북민이 북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 소중한 정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과는 별개로 엘리트 탈북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정부의 접근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는 정부가 일반 탈북민에 대한 지원, 강제북송 대응 등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국익 차원에서 정부가 엘리트 출신 탈북민 관리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북한 정권의 핍박을 받는 일반 주민들이 안전하게 탈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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