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공범이 된 유튜브, 쯔양 사태가 던진 경고

한승주 2024. 7. 24. 00: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돈벌이 혈안된 '사이버 레커'
1060만 유튜버 협박·갈취해

유튜브는 방송법 사각지대
영향력 커도 처벌 수단 없어

EU는 디지털법 만들어 규제
비방 영상 수익은 추징해야

이들은 파급력이 큰 온라인 공간에서 먹잇감을 노린다. 거짓말이라도 좋다. 명예훼손도 알 바 아니다. 눈길을 끌 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로 일단 유튜브 채널의 인지도를 높이는 게 최우선. 이를 바탕으로 광고 협찬을 받거나 후원금을 모금한다. 돈맛을 보니 욕심이 더 생긴다. 극단적인 주장을 할수록 조회수는 더 올라간다.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협박과 금품갈취도 서슴지 않는다. 노골적인 정파성으로 정치 갈등을 부추긴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난폭하게 달려오는 사설 레커(견인차)처럼 남의 불행에 돈 냄새를 맡고 달려와 악성 콘텐츠를 게시하는 유튜버. 우리는 이들을 ‘사이버 레커’라 부른다. ‘사적 제재’와 정의 구현을 내세우며 무분별한 폭로를 일삼지만, 이들에게 사적 제재는 이익 실현의 다른 말일 뿐이다.

사이버 레커의 폐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쯔양 협박 사건’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로 꼽힌 바 있는, 10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쯔양도 이들에게 당했다. 일부는 드러내길 원치 않는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뺏었고, 또 다른 유튜버는 이런 협박 사실을 당사자에게 묻지도 않고 만천하에 드러냈다. 하지만 세상은 쯔양 편이었다. 여론이 들끓고 언론이 움직이자 검찰은 엄정 대응을 약속했다. 이전에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 유명 연예인을 둘러싼 허위 사실을 유포한 악성 유튜버 등이 사회 문제가 됐다. 정치권에는 극렬 유튜버들이 판친다.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반대편을 향한 저주와 폭언이 난무한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이들이다. 과거 조직폭력배들이 했던 몸싸움을 이제 극단 유튜버들이 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1위, 월간 활성이용자수 무려 4625만명. 유튜브가 우리의 일상 여가 등에 친구처럼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런 만큼 허위 정보나 자극적인 콘텐츠에 따른 우려가 크다. 당초 우리가 유튜브에 빠져들었던 순기능도 있었지만 이제는 역기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국민의 92%는 악성 유튜버가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땅히 이들을 처벌할 제도적 수단이 없다. 쯔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도 엄밀히 말하면 협박죄에 대한 것이지 유튜브 내용에 대한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유튜브로 뉴스를 접하는 세상이지만, 유튜브 방송은 정식 저널리즘이 아니라 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 유튜브가 해외에서 운영된다는 이유로 정부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 자율 규제와 자정 기능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인데 해악이 너무 커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디지털 서비스법’을 제정했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은 자사 플랫폼에 문제가 있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신속하게 삭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글로벌 매출의 6%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미국도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이 갖고 있는 불법 콘텐츠 면책 특권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악성 유튜버들에게 가장 민감한 건 돈이다. 이들은 설령 명예훼손죄로 징역을 살더라도 자신의 콘텐츠가 세상에 유통되며, 여전히 수익을 거둔다면 무서울 게 없다. 그러니 이들이 악성 콘텐츠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비방 영상으로 거둔 수익은 추징하거나 몰수해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장을 열어준 유튜브도 알고 보면 공범이다. 그동안 무슨 내용이든 상관없으니 구독자만 모아와라, 그러면 광고를 주겠다 하지 않았던가. 뒷짐 지고 상황만 지켜보더니 이번엔 이례적으로 빨리 결정을 내렸다. 쯔양 사건에 연루된 사이버 레커들의 유튜브 수익 창출을 중지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022년 국내에서 유튜브로 ‘억대 수익’을 거둔 사람은 2781명이고, 이 중 절반가량인 1324명은 1020세대다. 유튜브가 젊은 층의 놀이터가 된 셈인데 이곳에 거짓과 폭로가 횡행하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아무 제재 없이 두고만 볼 것인가. 지금의 방송법은 유튜브가 이처럼 대중화되기 전에 만들어져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맞는 방송법 손질이 시급하다. 돈벌이 수단이 된 유튜브에 대한 규제와 처벌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