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생존자 편향의 오류

이경원 2024. 7. 2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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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과 달리 A감독을 명장이라 부르길 거부하는 한 야구선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A감독의 지도를 받던 그는 "모두가 똑같은 폼으로 야구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성공한 선수들로만 A감독을 설명하진 말아 달라"고 뼈있는 당부를 남겼다.

그만한 투자와 희생이면 모두가 창업에 성공하는 것처럼 부추기지 말라는 독자의 이메일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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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정치부 차장


많은 사람들과 달리 A감독을 명장이라 부르길 거부하는 한 야구선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A감독의 지도를 받던 그는 “모두가 똑같은 폼으로 야구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때론 상체가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도 한 손을 놓으며 안타를 만들었고, 힘없이 휘청이듯 할 때 오히려 장타가 나오는 선수였다. A감독은 이런 버릇을 고치라 했고, 언제 어느 상황이든 주문한 폼대로 타격하길 원했다고 한다. 감독의 주문과 스스로의 의문 속에서 좀체 답을 못 찾던 그는 경기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내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됐다. 그는 “내가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성공한 선수들로만 A감독을 설명하진 말아 달라”고 뼈있는 당부를 남겼다.

한 청년 요식업 사업가가 일하는 모습을 꽤나 희망찬 주말 기사로 적은 적도 있다. 그가 전국을 돌며 어떻게 튀김 요리법을 전수받았는지, 창업한 뒤 근면하게 살았더니 매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썼다. 대학 간 또래들과 달리 일찍 경제활동에 투신한 결과 어느 정도로 부유한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던 것 같다. 남다른 노력을 조명하려 한 기사는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만한 투자와 희생이면 모두가 창업에 성공하는 것처럼 부추기지 말라는 독자의 이메일도 왔다. 독자는 메일에 자영업자의 폐업 추이까지 첨부했다.

성공담을 적으려다 실패담으로 훈계받은 알량한 경험들이 떠오른 이유는 엉뚱하지만 대통령실 저출생수석비서관의 인선 기조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신설키로 한 이 자리에는 일과 가정의 양립 어려움을 체험한 ‘워킹맘’의 발탁이 비중 있게 검토된다고 알려져 있다. 인사에 상징적 의미가 담기겠으나 한편으론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지금 이 사회의 저출생 해결이란, 극복의 성공담보다 굴복의 실패담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아이와 일을 함께 지킨 워킹맘에게서 대책을 구하는 것은 어쩌면 생환한 전투기의 탄흔을 살펴 철갑을 덧댈 곳을 유추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살아 돌아온 전투기에 새겨진 적탄의 흔적에서는 정작 치명적인 피격 부위를 파악할 수 없다. 치명적인 공격을 당한 전투기는 애초 돌아올 수 없어서 분석 대상이 못 됐기 때문이다. 눈앞의 사태를 잘 취재할수록 이면의 사실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새기고 살아갈 때라 여긴다. 이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을 넘어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세상이 됐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점점 끼리끼리가 되고 인공지능(AI)의 도움까지 받아 각자의 논리로만 무장한 채 점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때의 논리라는 것은 알고 보면 우연의 결합이거나, 피장파장의 오류가 정당화 근거로 섞여든 것이다.

이 오류를 웅변하는 장이 어쩌면 한국 정치인 듯하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진정한 실패의 원인은 도외시한 채 자신의 진영에 살아 돌아온 데이터로만 열심히 성을 쌓아 올린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진심이 잘 전달되기만 하면 모두가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냉소하는 쪽에서는 대표들의 당내 득표율이 90%, 99%를 기록하고 있다. 법을 통과시키고 거부하며 각자 할 일만 되풀이할 때, 나아지는 것은 없다. 모두가 국민과 민의를 말하지만 치명적인 원인은 지쳐 말하지 않는 이들 틈에 있다. 대부분 민생들에게 정치란 지금 그놈이 그놈인 권력 다툼으로 보일 뿐이다. 지금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논증을 뛰어넘는 반성과 통찰이다. 각자의 방식만 고집해 성공하려 애쓰는 일은 불필요한 곳에 철갑을 덧대 더욱 무거워지는 일 같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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