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막 내린 中 3중전회… 어려움 인정했지만 ‘당·국가 주도’ 고수
지방분권 강화·민간 기업 육성
정년 연장·3억 농민공 호적 허용
서방선 “개혁·부양책 미흡하고
점점 더 국가 주도로 회귀” 냉담
‘시진핑 집권 3기’ 중국 경제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지난 18일 베이징 징시호텔에서 막을 내렸다. 199명의 중앙위원과 165명의 후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나흘간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보고한 ‘진일보한 전면 개혁 심화와 중국식 현대화 추진에 관한 당 중앙의 결정’이 결의됐다.
관영 신화통신이 18일 폐막 직후 요약본인 ‘공보’를 공개했고 19일에는 당 중앙위가 결정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선 중국이 처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고 부동산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밝혀 주목받았지만, ‘시장의 결정적 역할’ 대신 ‘당과 국가 주도’라는 원칙이 변함없이 강조됐다.
서방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박하다. 과감한 개혁 방안이 없었고 경기 부진을 타개할 대규모 부양책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이번 3중전회는 시장이 중국 경제 발전을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가장 중요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면서 “시진핑은 대신 점점 더 국가 주도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론에선 보수적 기조가 뚜렷하지만 각론에선 크고 작은 변화 움직임이 보인다. 신화통신이 21일 공개한 ‘결정’ 전문을 들여다보면 중국이 부문별로 어떤 개혁을 추진하려는지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전문은 총 60개 조항, 300여개 개혁 과제로 구성됐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지방 분권 방침이다. 추상적 구호가 많은 다른 부분과 달리 여기선 꽤 구체적인 조치들이 제시됐다.
중국은 1994년 이후 전국의 세수가 중앙 정부에 집중되는 구조여서 중앙 정부 의존도가 높다. 지방 정부는 토지 이용권을 매각하거나 빚을 내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사회간접자본 개발 등에 투자해 왔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과잉 투자로 빚더미에 오른 지 오래다. ‘결정’에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재정 관계를 ‘명확한 권리와 책임, 재원의 조정, 지역균형’을 원칙으로 확립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해 지방 자립 재원을 늘리고 지방 세원을 확대하며 지방세 관리 권한을 확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담배·주류·사치품 등에 부과하는 소비세 징수를 점차 지방 정부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은 지난해 1조6000억 위안(약 304조원)의 소비세를 징수했는데 50%만 이관해도 지방 정부는 8000억 위안(152조원)의 세수가 증가한다. 지방 정부가 소비 진작에 힘쓸 수 있도록 소비세 부과 단계를 생산지에서 도매상·소매상으로 옮기고 지방 부가세 세율도 지방 정부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했다.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고 도시 정책을 수립하는 등 부동산 관련 정책 권한도 지방 정부에 100% 일임하기로 했다. 중앙 정부 중심의 부동산 정책과 규제가 부동산값 폭등과 급락을 낳는 등 한계가 분명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민간 기업 육성 방침도 강조했다. 국영 기업과 민간 기업의 차별을 해소하고 국영 기업이 독점해온 국가 주요 인프라 사업을 민간 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민간 기업에도 국가 중대 기술 개발을 맡기고 금융 지원 제도도 개선한다. 에너지·철도·통신·수자원·공공사업 등 국영 기업 중심 산업은 자연 독점 단계인 경우 독립적 운영을 추진하고, 경쟁 단계인 경우 시장화 개혁을 하기로 했다. 민간 기업 육성을 위한 민영경제촉진법 제정 방침도 재확인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내용은 정년 연장이었다. ‘결정’은 인구 고령화 등에 대응해 “점진적인 정년 연장 개혁을 착실하고 질서 있게 추진한다”고 밝혔는데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반발이 컸다. 이들은 “정년 연장이 아니라 청년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 “젊은이는 집에 앉아 있고 노인은 직장에 다닌다” 등의 비판적 댓글을 달았다. 연금 재정 고갈과 노동인구 감소 등에 대응하려면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지만 청년 일자리 확대라는 난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못하면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중국에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인 3억 농민공에 대한 호구제도 개혁안도 제시했다. 농민공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 살면서 일하지만, 도시 호적이 없어 각종 사회보장 제도에서 배제된다. 도시 학교에 보낼 수 없어 고향의 노부모나 친인척에게 맡겨둔 자녀가 학교폭력 등에 휘말린 사건이 최근 여러 차례 뉴스가 됐다. 이번 ‘결정’에선 농민공의 거주지 호적 등기를 허용해 사회보험과 의무교육 등의 권리를 누리게 한다고 명시했다. 민생 측면에선 진일보한 결정이지만 도시화 가속으로 발생하는 농촌 공동화와 도시 과밀화 등의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또 다른 과제다.
‘결정’에선 시 주석이 최근 강조해온 ‘신품질 생산력’을 대내외적 경제위기 극복의 전략으로 부각시키며 차세대 IT와 인공지능(AI), 항공·우주, 신에너지, 신재료, 첨단 장비, 생물·의약, 양자 과학·기술 등을 전략 산업으로 명시했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집중 투자할 산업인 만큼 세계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대중국 디커플링과 수입 관세 강화 등 서방 국가들의 견제도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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