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앞세우는 대통령

2024. 7. 2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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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지난주 폭우와 폭염 속에 멀리 체코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한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한국형 원전을 체코에 수출하게 된 것이다. 24조원 규모로, 원전 강자인 프랑스를 제치고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회귀하는 유럽 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이제 원전 사업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의 하나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런데 눈을 국내, 특히 정치 분야로 돌리면 여당과 야당, 용산과 여의도 할 것 없이 온통 짜증 나는 일로 국민들의 불쾌지수만 높여주고 있다. 신문·방송은 물론 유튜브에선 채 상병 특검, 윤석열 탄핵, 김건희 명품백, 대통령 거부권···, 이런 단어들이 시시각각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거기에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판으로 전락했다. 정책 제시는 없고 의혹 제기와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너 달 전 총선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던 한 식구가 맞느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라진 줄 알았던 지난 세기의 정치폭력까지 목격해야 하는 현실은 분노보다 차라리 슬픔에 가깝다.

「 해외서 세일즈 외교 앞장 대통령
국내 여야 정치인과도 소통하길
여러 사람 만나서 조언 경청하되
겸손한 태도로 디테일 신경써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독단적인 국회 운영은 당내 비명계는 물론 전통 지지자들로부터도 비판받고 있다. 급기야 자의적으로 바꾼 대표 선출제도는 이재명 대표의 2026년 지자체 선거 후보 공천과 2027년 대선 후보 셀프 당선을 위한 것 아닌가? 그나마 대표 경선에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출마한 것은 야당의 1인 체제 극복의 단초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불행 중 다행이다. 김 전 지사의 출마가 없었다면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민주당이란 소리를 들어 마땅하지 않았겠는가?

대화와 타협, 정책과 국민이 실종된 여·야당은 그렇다 치고, 용산은 어떤가? 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애국심에 대해서는 의심 없이 지지를 보낸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에도 ‘세일즈 외교 대통령’을 자임한 그의 공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10일 워싱턴에서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을 따로 만나 막판 설득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 정상들과는 대화를 잘하는 윤 대통령이 국내 여야 정치인들과 말문을 트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오는 10월 퇴임하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일과 후 시간을 야당 의원이나 딴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경청하는 데 보낸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소통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개최된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연합뉴스

지난주 윤 대통령 지지율은 29%(부정률 60%)로 지난 석 달간 20%대 초중반에 머물다 30%에 근접했다. 부정 평가자들은 경제·민생·물가(15%)에 이어 소통 미흡(8%)과 독단적·일방적(6%) 국정운영 등을 지적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친화력이 출중하다고 알려진 윤 대통령은 먼저 여권 내의 소통 채널을 복구해야 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의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를 조속한 시일 안에 용산으로 초청하시라. 여권 내 대화가 트인다면 새로 선출될 야당 대표는 물론 사회 각 분야의 경험도 많고 반듯하기도 한 사람들과도 적극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설사 ‘서먹서먹한 관계’가 있었더라도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앞세워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처럼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무엇을 언제 어떻게 왜 해야 할지 순서와 가닥이 잡혀갈 것이다. 다만, 사람들을 만날 때 말수를 줄여야 한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라고 하지 않는가. 또한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통 큰 언행보다는 디테일에 주의하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의 모습. 장 원장은 19일 양극화와 높은 물가를 지적하며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 번도 국회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시대의 양심적인 정치가로 국회의원의 특권을 없애자고 부르짖어 온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최근 우리 사회는 과도한 양극화, 위화감과 패배 의식, 높은 물가와 과다한 부채, 온갖 사건 사고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더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 오고 있다고 걱정했다. 동감이다. 많은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이런 우려를 뚝심 있게 날려버려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아있다. 19세기 미국의 수필가이자 시인 에머슨의 ‘성공이란’ 시를 새겨주길 바란다.

“성공이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애정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얻고 잘못된 친구들의 배신을 견뎌내는 것. 아름다움의 진가를 알아내는 것, 다른 이들의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작은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조금 더 편하게 숨 쉴 수 있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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