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의 시선] 현대차 계속 고용이 ‘실험’ 넘어서려면
벌써 10년도 지났다. 울산광역시 울주에 있는 고려제강 언양공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특수 선재(線材·쇠밧줄)를 만드는 곳인데, 만 60세(당시엔 55세) 정년 퇴직자를 ‘신입사원’으로 재고용하는 게 특징인 회사다. 일할 의지가 있고, 신체검사에 합격하면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정년은 따로 없다. 아니, ‘체력이 다할 때까지’다.
이 회사의 ‘정년 없는 공장’ 실험은 2008년 시작됐으니 올해로 17년째다. 지금도 이곳에선 30명이 근무 중이다. 최고령자는 만 70세다. 하루 8시간 근무가 원칙이며 잔업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매출은 108억원. 직원 평균 연봉은 4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작업 숙련도가 높고, 서로 일하는 호흡이 좋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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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탁 1→2년 사실상 정년 연장
인구절벽·연금개혁 맞물려 관심
고용방식·임금 등 자율 넓혀야
」
새삼 고려제강 언양공장이 떠오른 건 최근 마무리된 현대자동차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 내용 때문이다. 정년 퇴직자의 촉탁 계약(숙련 재고용)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퇴직 때 일하던 부서에 배치되고, 생산직 초봉 수준인 연 5000만~6000만원(성과급 별도)의 급여를 지급하는 조건이다. 현대차 측은 “정년 연장 관련한 제도 변화 추이를 점검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개선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봉은 줄어도 정년이 사실상 2년 연장되는 ‘계속 고용’ 합의다. ‘노후 안전판’인 국민연금 개시 연령이 63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소득 절벽’을 피할 수 있다.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강성 노조의 상징으로 불렸다. 노조원 4만여 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데다 2018년까지 매년 파업을 벌였다. 이번 합의는 퇴직을 앞둔 고령 직원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면서 노사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차 노조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50세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면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숙련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의 이런 재고용 합의는 노사 이슈를 넘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지도 관심사다. SK하이닉스와 포스코, LG유플러스 등 대기업 노조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국가 중 하나다.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0.7명대 초저출산 여파로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이미 5년 전부터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 950만 명의 은퇴가 시작됐다.
기업으로선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가 시급한 숙제가 됐다. 정년 연장 내지 재고용이 ‘노동 절벽’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도 긍정적이다. 고령 노동자의 경제 활동이 연장되면 자연스레 지갑 여는 횟수가 늘 것이고, 이는 내수 진작에 플러스다. 정부는 연금과 복지 지출을 줄일 수 있어 재정 안정에도 기여한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의무 납입 연령을 올리고(현행 59세), 수급 개시 연령은 늦추는 방향으로 개혁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정년이 늘어나면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지고, 이는 연금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문제는 곳간이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져서다. 업무 성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시름 거리도 있다. 지금처럼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을 연장하면 대기업, 정규직 직원만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 되레 채용문이 닫히면서 청년 세대와 갈등을 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도입 후 2010~2016년 청년 일자리 16.6%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정년 연장 제도화에 한 발 다가서고 있다. 올 하반기 ‘계속 고용 로드맵’을 내놓을 예정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 위원회’를 발족했다. 임금체계 개편 의지도 밝혔다. 고려제강이 정년 퇴직자 전용 공장을 만든 건 ‘신의’라는 측면도 있다. 1993년 노조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자, 오너 경영인인 홍영철 회장이 일자리 연장으로 화답했다. 숙련공의 기여도 컸다. 임금을 양보하고, 생산성을 유지했다. 중국 업체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납기와 품질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런 검증된 실력을 통해 퇴직자 재고용은 실험을 넘어 ‘정착’이 가능했다. 정년 연장은 이렇게 고용 방식과 임금 체계 등에서 기업의 자율이 바탕이 돼야 한다. 정부는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의 방식을 넓혀주고, 세액 공제나 인건비 지원 같은 인센티브 제공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상재 경제산업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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