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돈 내면 감형? 피해자 울리는 ‘기습공탁’ 막는다
A씨(40대)는 2022년 5월 자신을 ‘멘토’로 여겨왔던 20대 B씨와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A씨는 B씨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 결국 A씨는 유사강간치상 혐의로 지난해 4월 재판에 넘겨졌다. B씨 측은 “신뢰 관계를 깬 데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A씨는 범행 자체를 부인하며 B씨의 요구를 무시했다. 지난해 8월엔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불쑥 법원에 1000만원을 공탁했다. 형량을 낮추기 위한 ‘기습 공탁’이었다. B씨와 B씨의 변호인은 선고 당일 뒤늦게 공탁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기습 공탁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A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B씨의 변호인은 “양형 기준이 4~7년인 범죄였는데 가해자의 기습공탁이 반영돼 이보다 낮은 실형이 확정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대법원에서도 3년형을 확정받았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법원에 일정 금액을 맡겨 피해 회복을 돕는 제도로 판결에도 감경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형사공탁 제도를 악용해 판결 선고 직전 피해자 의사도 묻지 않고 감형을 위해 ‘기습 공탁’을 하거나 감형 혜택을 받은 뒤 공탁금을 회수해가는 ‘먹튀 공탁’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이에 정부가 이같은 꼼수 악용을 막기 위한 형사소송법 및 공탁법 개정안을 2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형사소송법엔 판결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형사공탁에 나서는 경우 법원이 피해자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하는 규정을 신설했고, 공탁법엔 형사공탁금의 회수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원래 변제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야 공탁이 가능했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공탁이 불가능했는데 이는 피고인이 피해자 측에 합의를 강요하는 2차 피해로 이어지곤 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2년 12월 피해자의 동의 없이도 법원에 일정 금액을 맡겨 피해 보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됐다.
하지만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형사공탁 특례는 시행 직후부터 기습 공탁이라는 꼼수로 악용됐다. 피해자 동의 없이 피고인이 언제든 공탁금을 낼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피해자 모르게 돈을 공탁한 이후 이를 근거로 감형받는 맹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법원행정처에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된 2022년 12월 형사공탁금 신청 건수는 1486건이었다. 이후 매달 2000건 안팎의 공탁 신청이 이뤄지다 지난 1월엔 2594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 6월까지 약 3만 8126건의 공탁금이 신청됐지만, 같은 기간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가는 건수는 1만 9594건으로 약 51.3%에 불과했다. 특례 시행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1·2심 판결 988건 중 선고 2주 이내에 이루어진 기습 공탁이 558건(56.4%)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검찰도 형사공탁 제도가 악용되는 상황에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8월 대검찰청은 공탁금이 납입되면 검사 측이 재판부에 선고 연기나 변론 재개를 신청한 뒤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의사를 확인토록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법무부도 올해 초부터 제도 정비에 나서 형사소송법·공탁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향후 국회의 입법 절차가 남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선고 직전 기습적으로 공탁하면 법원이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어 양형에 유리한 사유로 고려됐다. 하지만 피해자 의사를 청취하도록 함으로써 재판부가 선고할 때 공탁으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의사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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