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실적 나빠도 주가 ‘쑥’…무슨 일이
유한양행 얘기다. 유한양행은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2분기 실적 기대감도 낮다. 에프앤가이드가 종합한 2분기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5272억원, 영업이익 224억원이다. 증권가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가량 늘겠지만 영업이익은 18% 가까이 하락하리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바이오 애널리스트들은 당장의 실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주가를 계속 올리고 있다. 7월 들어 유한양행 리포트를 발표한 8곳의 증권사 가운데 6곳이 상향 조정했다. 대신증권이 목표주가를 10만원에서 13만4000원으로 올린 것을 비롯해 키움증권(10만원 → 12만원), 다올(9만5000원 → 11만원), 메리츠(10만원 → 11만원), 삼성(9만5000원 → 10만4000원), 미래에셋(10만5000원 → 10만7000원) 등이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주가도 상승세다. 4개월 가까이 7만원대를 횡보하던 주가는 7월 들어 8만원대로 뛰었다. 지난 7월 16일 장중 최고 10만400원을 찍는 등 매일 최고가를 갈아치운다. 최근 1년 새로 따지면 70% 넘게 올랐다.
증권가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미국 진출에 주목한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렉라자는 오는 8월 미국 승인을 앞뒀다. 렉라자는 폐암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신호 전달을 방해해 폐암 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표적항암제다. 국내 31번째 신약이다. 유한양행 협업사인 얀센은 지난해 12월 FDA(미국 식품의약국)에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병용 요법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렉라자는 유한양행이 개발사 제노스코로부터 기술이전받았다. 2015년 전임상 단계 물질인 렉라자를 유한양행에 기술을 이전한 바 있다. 이후 유한양행은 렉라자 개발을 이어갔으며 2018년 존슨앤존슨(J&J) 자회사인 얀센과 12억5500만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진출 임박 소식에 제노스코 모회사인 오스코텍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렉라자의 미국 승인은 최근 주요 임원진이 자사주를 매입하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4일 이병만 유한양행 경영관리본부장과 유재천 약품사업본부장은 자사주를 각각 1000주 매입했다. 지난 6월에는 김재용 기획재정부문장이 440주를, 지난 5월 이상호 품질경영실장이 300주, 김열홍 R&D(연구개발) 총괄사장이 자사주 200주를 각각 매수했다. 매입가는 7만원대 초중반이다. 증권가에서는 기업에 호재가 있을 때 임원이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매입한다는 점에 비춰 렉라자의 미국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렉라자의 미국 FDA 승인 여부는 오는 8월 22일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10월쯤 발표가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증권가는 2개월 빠른 발표를 점친다.
마일스톤으로 실적 끌어올릴 수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더 빠른 승인도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지난 2월 존슨앤존슨이 렉라자 병용 요법에 대해 FDA로부터 우선 심사 대상 승인을 받은 바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2분기에는 R&D 비용 증가와 이뮨온시아 영업적자를 반영하며 실적이 안 좋아졌지만 렉라자 승인이 유한양행 실적 향상의 모멘텀(계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 애널리스트는 “승인 후에는 출시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 유입으로 하반기 호실적이 기대된다”며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의 연내 기술이전, 내년도 렉라자 병용 요법의 전체생존(OS) 데이터 확인 등 모멘텀이 남아 있다”고 했다.
김준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경쟁 약물인 타그리소·화학항암제 병용 요법은 ‘처방의약품 신청자 수수료법(PDUFA·Prescription Drug User Fee Act, 잠깐용어 참조)’ 기한 대비 2개월 먼저 승인된 이력이 있다”며 “렉라자 또한 PDUFA 기한 전 승인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렉라자와 리브리반트가 이미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단독 치료제로 허가된 점은 승인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또한 기존 치료보다 유효성과 안전성 개선이 확인돼야 우선 심사 대상으로 지정되는데 얀센이 제출한 병용 요법은 우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병용 요법이 FDA 승인을 받으면 유한양행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2018년 얀센에 렉라자를 기술이전한 덕분에 마일스톤과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FDA 승인으로 유한양행이 수령하는 마일스톤은 6000만달러(약 830억원)로 알려졌다. 로열티는 통상 제품 판매액 10% 내외를 받는다. 지난해 567억원이었던 유한양행 영업이익이 올해 1089억원, 내년 1600억원 등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렉라자·리브리반트 피하주사(SC) 제형 병용 요법이 주목받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기존 렉라자·리브리반트 IV 제형 병용 요법보다 편의성이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지며 렉라자의 활용 가능성이 커졌다.
얀센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4에서 “EGFR 돌연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결과,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SC 제형을 활용했을 때 투약 시간이 기존(IV 제형) 4~5시간에서 5분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주입관련반응(IRR)과 정맥혈전색전증(VTE) 부작용도 개선됐다.
얀센은 렉라자·리브리반트 SC 제형 병용 요법과 관련해 유럽의약품청(EMA)에 허가 신청을 냈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향후 성과에 따라 유한양행은 마일스톤과 로열티를 추가 수령할 수 있다. 이희영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발표한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기반으로 렉라자의 목표 시장점유율을 기존 30%에서 50%로 상향 조정했다”며 “미국 승인 이후 유럽, 중국, 일본 등으로 출시 국가를 확대하는 등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
김열홍 R&D 총괄사장 주도
렉라자의 승인 임박과 함께 유한양행 R&D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10년간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이었던 유한양행은 김열홍 총괄사장 부임 이후 다각화에 더욱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지난 7월 1일 표적단백질분해(TPD) 치료제 개발 기업 유빅스테라퓨틱스와 전립선암 치료제 후보물질인 ‘UBX-103’ 계약을 체결했다. 김 총괄사장 부임 이후 3번째 기술 도입이다. 앞서 기술 도입한 2건이 알약, 캡슐 등 저분자화합물이었다. 이번 UBX-103은 TPD라는 신규 모달리티(modality)라는 점이 달라졌다. TPD는 질병 원인 단백질을 분해해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저분자화합물과 다르게 아예 표적 단백질을 분해해 제거한다.
지난해 5월 비만·당뇨병 치료제를 개발 중인 프로젠을 인수하고 최근 신약 개발을 위해 R&D 협력 계약을 맺었다. 양 사는 첫 공동 개발 과제로 면역항암 이중항체를 선택했다. 프로젠은 유한양행의 ‘넥스트 렉라자’ 중 하나로,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의 원 개발사다. 이로써 유한양행은 첫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또한 유한양행은 지난 6월 말 고셔병 치료 신약으로 개발 중인 ‘YH35995’의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식약처에서 승인받았다. YH35995는 2018년 GC녹십자에서 기술을 도입한 신약 물질이다. 고셔병은 유전적 돌연변이의 영향으로 특정 효소 결핍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사장 1인 체제였던 유한양행은 지난해 김 총괄사장을 영입하며 사장이라는 새로운 직급을 부여했다. 김 사장은 고려대 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 출신으로 암 연구와 치료 분야의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김 사장의 영입은 공채 중심의 ‘순혈주의’를 중시하던 유한양행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 사장 부임 이후 유한양행은 지분 투자에서 기술 도입으로 신약 개발 전략을 바꿨다.
잠깐용어 *PDUFA(Prescription Drug User Fee Act) 미국 식품의약국이 허가 신청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가 리뷰 결과를 1년 안에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9호 (2024.07.24~2024.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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