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北 도발 않으면 확성기 멈출 수도”…압박·회유 넘나드는 심리전
군 당국이 23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측에 “향후 행동에 따라 현재 가동 중인 확성기 방송을 멈출 수도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전날(22일)까지 북측 최전방 지역에서 인민군의 탈북 시도, 지뢰 폭발 사고가 일어난 구체적인 부대명 등 정보 사안까지 북측에 알리며 경고했던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군이 본격적인 ‘강·약 조절’의 심리전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대북 확성기를 통해 북측에 전달된 ‘자유의 소리’ 방송은 오전 첫 소식을 통해 “대한민국군이 북한의 대남 쓰레기(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휴전선과 맞닿은 모든 지역에 확성기 방송을 전면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군이 '앞으로 대한민국군의 모든 조치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면서 '북한군이 대한민국의 대응을 지켜만 볼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을 멈출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방송했다.
합참은 지난 6월 6년 만에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첫 시행한 이후로 ‘가동 내지는 중단의 조건’을 국내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는데, 이를 공식 입장 발표가 아닌 확성기 방송으로 직접 북한에 전한 셈이다.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나쁜 행동’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방증일 수 있다.
합참 관계자는 “확성기 방송 내용이 합참의 공식 입장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자유의 소리는 국방부 직속부대인 국군심리전단이 운영하는 심리전 수단이다.
이런 방식 자체를 일종의 심리전술로 볼 여지도 있다. 북한 당국이 다시 오물 풍선을 띄우는 등 도발한다면 확성기 방송을 듣고 있는 최전방 북한 장병들이나 주민 입장에선 북한 정권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어서다.
최전방 '삽질' 지친 北병사들 흔들기
실제 고출력 스피커 사용시 전방 10~20km까지 뻗어나가는 대북확성기 방송은 열악한 환경에서 복무하느라 심리 상태가 취약한 최전방 북한군 병사들이 '1차 청취자'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4월부터 비무장지대 안의 군사분계선(MDL) 부근에 수풀을 제거하고 토양 평탄화 작업, 지뢰 매설 작업 등을 시작했다. 이 때부터 서부, 중부, 동부 전선에서 수 천명의 북한군 병사들이 보호장구도 갖추지 못한 채 매일 같이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지뢰 폭발, 온열 질환 등으로 사상자만 수십 명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물풍선 제작 및 부양도 이들 몫이다.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대북 방송의 심리전 효과가 더욱 클 수 있다는 게 군의 판단이다.
김정은 딸 김주애 언급, “우크라 전선 끌려갈지도" 경고도
확성기 방송 내용은 통상 ▶김씨 일가의 3대 세습과 주민 인권 문제 ▶한국의 체제 우월성 ▶연예 뉴스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 방송에서도 "김정일만 해도 삼촌 김영주(김일성의 막냇동생)나 (이복형)김평일을 상대로 고생스런 숙청을 벌이고 나서 후계자 자리를 따냈지만, 김정은 이후로는 김씨 일가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3대 세습집단으로 굳어졌다”거나 “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열병식에 데리고 다닌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또 “’백두혈통’의 순수성에 흠이 된다는 걸 본인들도 알기에,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네 번째 아내 조선계 일본인 고영희의 자식이란 건 북한에서 알리지 않고 있다”고 방송하는 등 김정은이 민감해 하는 모계 혈통까지 거론했다. 북한 수뇌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최고 존엄 모독'으로 여기며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이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김정은은 최근 로씨야(러시아)와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을 로씨야에 보내려 한다. 내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가 로씨야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 내몰릴 지도 모른다"고 했다.
심리전 조직 지원본부→작전본부 이관·강화
다만 확성기 방송이라는 사실상 유일한 실효적 대북 카드를 너무 빨리 소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비물리적 여러 대응 수단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합참 직제령에 따르면 합참은 지난해 1월 기존 군사지원본부 산하의 심리전 조직을 작전본부 산하로 이관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국방부 직속부대인 국군심리전단은 대령급이 지휘하지만, 큰 틀의 작전 지침 등은 합참이 부여하는 구조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전방 지역 포병 사격과 같은 군사적 대응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의 심리전이 아니라, 작전적 측면에서 심리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전환의 의미가 있었다. 대북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 재개는 이런 비물리적 대응 수단을 실전에 적용해본다는 의미도 있다.
北 두려워할 한·미 공중전력 연합훈련도
공군에서는 F-15K, F-16, F-5, FA-50, KA-1 등이 투입돼 미측 자산과 근접항공지원, 항공차단, 방어제공 등을 함께 훈련하게 된다. 이번에 훈련에 참여하는 한·미 전력은 전략 자산으로 보긴 어렵지만, 첨단 재래식 전력에 해당한다. 북한은 특히 공중 전력이 취약해 한·미 공중 연합 훈련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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