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이 없어서, 세상을 떠나는 이들

문진수 2024. 7. 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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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은퇴 6] 관계망의 회복이 절실하다

해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년을 맞아 은퇴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회귀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 나이는 72.3세다. 정년은 비자발적 실업이며 경력 단절일 따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다. 우리 시대의 은퇴란 무엇인가. 생애 후반부는 어떤 모양으로 조각해야 하나. 인생 곡선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글은 퇴직과 정년, 은퇴와 수명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하는 중년/장년/노년의 고령자들이 좋은 삶(good life)을 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유엔(UN)이 매년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37개국 중 57위(5.951점)에 머물고 있다. 우리보다 '덜' 행복한 나라가 80개나 있으므로 그리 나쁜 점수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잘 사는 OECD 국가만 놓고 순서를 매겨보면 결과가 달라진다.
 
▲ OECD 국가 행복지수 (2020∼2022년 평균) World Happiness Report 2023 (2023, UN SDSN), 기자 재편집
ⓒ 문진수
 
현재 OECD에 가입된 총 38개 나라 중 한국은 35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우리보다 점수가 낮은 나라는 그리스(36위), 콜롬비아(37위), 튀르키예(38위)뿐이다.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은 중위권에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는 제자리 수준이다.

이 점수 산출에는 총 6개의 지표(1인당 GDP,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인식)가 활용됐다. 1인당 GDP는 세계은행의 구매력평가(PPP) 기준을, 기대수명은 세계보건기구의 기대수명 통계를 적용했다. 나머지 4개 지표는 나라당 약 1천 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각 지표에 대한 평가점수를 산출한 다음, 최근 3년간(2020∼2022) 평균값을 계산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한국의 지표별 점수 및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인당 GDP : 1.853점 (26위)
기대수명 : 0.603점 (3위)
사회적 지원 : 1.188점 (85위)
선택의 자유 : 0.446점 (112위)
관용 : 0.112점 (54위)
부패인식 : 0.163점 (97위)
기타 : 1.587점

돈(1인당 GDP)과 건강(기대수명) 순위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관계(사회적 지원)와 주도성(선택의 자유) 순위는 낮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지원이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척/친구가 있는가를, 선택의 자유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자유를 뜻한다. 기타는 최악의 국가를 가상으로 설정하고 보정(補正)한 점수다.

요약하면, 우리는 잘 사는 나라의 시민이고 수명도 길지만,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선택의 자유가 많지 않고 외롭게 산다는 뜻이다. 관계의 끈이 사라진 차가운 도시에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고립된 존재로 남아,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서글픈 자화상이 투영되어 있다.
 
▲ 사회적 관계망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 2023년 사회조사 결과 (2023.11/통계청)
ⓒ 문진수
   
이 그림은 사회적 관계망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몸이 아파서 집안일을 부탁해야 하는 경우, 갑자기 큰돈을 빌려야 하는 경우,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받을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다.

나이가 늘수록, '긍정' 비율이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세 번째 질문, 즉 힘들 때 대화를 나눌 상대가 있는가? 라는 대목이다. 40대의 18%, 50대의 20%, 60대 이상의 27%는 사회적 관계망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60대 이상 연령층에 속한 100명 중 27명이 상호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해마다 3천 명이 넘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빈곤율과 더불어 자살률도 세계 1위다. 생의 말년에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 대다수는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다. 현재 65세 이상의 독거노인 세대는 전국적으로 190만 가구에 이른다. 전체 노인의 20%가 넘는 수치다.

중장년층도 심각하다. 아래 그림은 연령대별 자살자 수치를 나타낸 것이다. 2022년 한 해에만 1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구 10만 명당 26명꼴로, 남자가 70%(9,019명), 여자가 30%(3,887명)다. 전 연령층에서, 남자의 비율이 훨씬 높다. 전체 자살자 중 50대 남성의 비율이 무척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연령대별 자살자 수치 성/연령별 고의적 자해 사망자 수 (2023.9/통계청)
ⓒ 문진수
 
가장 쓸쓸한 죽음이라 불리는 고독사 1위가 남성 50대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려준다. 치유자 정혜신은 '내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산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옳다면, 자살하는 노인들 곁에는 마음의 주파수를 맞힐 그 '한 명'이 없었다는 뜻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 안전망 사이로 사람들이 추락하고 있다. 이 비극을 막으려면, 치유와 돌봄의 순환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자신을 돌보는 것이 치유고, 타인을 살피는 것이 돌봄이다.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은 이는 치유할 힘을 얻고, 회복된 이는 누군가를 돌봄으로써 은혜를 갚는다. 치유와 돌봄은 그렇게 선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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