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흡연폐해 책임, 담배회사에 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돼야”

민태원 2024. 7. 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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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없는 세상] 건보공단 담배소송 10년
임현정 법무지원실장
2014년 4곳 상대 533억 손배소송
1심 패소 뼈아프지만 소송과정서
국민에 담배 폐해 경각심 큰 의미
美만 해도 최종 판결까지 13년 걸려
객관적 과학적 근거로 끝까지 최선

임현정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담배소송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임 실장은 “항소심 재판부도 국민 여론과 사회 변화, 제출된 방대한 증거와 전문가 목소리를 전향적인 태도로 살펴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1심 패소가 뼈아프지만, 소송 진행 과정에서 국민이 담배의 폐해, 위험성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경각심을 갖게 된다면 이 또한 공단 ‘담배소송’이 갖는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 폐해에 대한 담배회사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시작한 지 10년 되는 해다. 건보공단 임현정(47) 법무지원실장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담배소송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현 BAT로만스) 등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 상위 3사 및 제조사 1곳을 상대로 533억원(피해자 3465명)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6년만인 2020년 11월 1심 법원이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공단은 곧바로 항소했다. 이듬해 4월부터 시작된 항소심 재판은 지난 17일 8차 변론까지 마친 상태다.

임 실장은 “담배소송은 담배에 대한 국민 인식이나 사회적인 흡연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이라며 “미국 사례만 봐도 주 정부가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담배회사의 내부 문건이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 공개되고 전국적으로 금연운동재단 설립, 금연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흡연 폐해의 책임이 담배회사에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흡연을 개인 선택의 문제로 여기는 시각에 머물러 있다. 특히 현재 담배소송 대상자들은 과거 1950~60년대 흡연을 시작해 30년 넘도록 담배를 피워 온 이들로, 과연 당시 흡연과 폐암·후두암의 발병이 온전히 개인의 문제였는지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하고 국민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실장은 “앞으로는 소송에 대한 법리 보강, 증거 자료 발굴뿐 아니라 흡연 폐해와 담배소송 관련 대국민 관심도를 높이고 사회적 지지 여론을 끌어내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 실장은 담배소송 초창기부터 공단 소속 변호사로 참여했으며 최근 실무 책임자인 법무지원실장에 임명됐다. 다음은 임 실장과의 일문일답.

-담배소송 10년의 소회는.

“2014년 소송 제기 당시는 개인 피해자가 낸 담배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확정(패소)된 직후였다. 물론 쉽지 않은 소송이 될 거라는 판단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이 모든 담배 제품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볼 일도 아니었다. 공단 담배소송 전담 팀원들(변호사 3명, 지원 인력 3명)과 담배회사 내부 문건, 국내외 관련 논문 등 소송 자료를 확보하고 외부 변호사들과 협업해 법리 검토를 하는 한편,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교류하면서 정말 바쁘게 보낸 것 같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물론 1심 판결은 뼈아픈 결과이고 변호사로서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1심의 주요 쟁점은 뭐였나.

“공단의 주장은 크게 3가지다. 대상자들이 흡연으로 인해 폐암(소세포폐암·편평세포암) 및 후두암에 걸렸으며(인과 관계), 담배회사는 담배 제조과정에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품 설계를 채택하지 않고 중독성에 대한 경고도 충분치 않았다(제조물 책임). 또 담배 유해성을 알고도 첨가제 등을 통해 위험성을 증대시켰고 저니코틴·저타르를 이용해 덜 해로운 제품으로 소비자를 기망했다(불법 행위 책임)는 것이다. 1심 재판의 쟁점은 여기에 공단의 손해배상 직접청구 가능 여부, 손해액 범위 등을 더해 5가지였는데,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판결의 문제점과 아쉬운 점은.

“선행 사건(개인 담배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복붙(복사해 붙이기)’ 수준으로 반영했다는 점이다. 국민 대부분이 이제는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흡연과 폐암 간 인과 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아쉽다. 특히 소송 대상자 3000여명의 의무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제출하고 객관적인 연구 논문, 국내외 저명 교수들의 의견서까지 확보해 증거로 냈으나 1심 재판부가 구체적인 검토 없이 개별 인과 관계를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 또 흡연과 관련성이 매우 높다고 인정된 이번 소송 대상 암종(비소세포암·편평세포암)에 대해, 선행 대법원 판결의 대상인 ‘폐선암(흡관과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낮음)’과 동일한 기준으로 인과 관계를 불인정한 것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아울러 해외(미국) 소송에서 이미 담배 결함 및 불법 행위가 인정된 외국계 담배회사의 국내 자회사들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나 판단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소송 과정에서 불리하거나 어려운 점은.

“소송은 법리와 증거가 기본이지만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사례를 보면 내부 문건 공개, 내부 고발자 등으로 인해 폐암 등 흡연 폐해의 책임이 담배회사에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반면, 우리는 아직도 흡연을 개인 선택의 문제로 여기는 시각이 한계가 되고 있다. 이는 담배의 중독성과 담배회사의 강력한 마케팅 영향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 사법제도의 특징 또는 한계도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국내에는 영미권에 존재하는 적극적인 증거확보 수단, 즉 ‘디스커버리 제도’ 같은 절차가 없다. 담배소송처럼 위법 행위에 관한 각종 증거가 담배회사에 편중된 소송에선 증거 확보에 제약이 크다. 또 통상 2년마다 이뤄지는 법관 인사이동으로 인해 담배소송 같이 쟁점이 복잡하고 증거가 방대해서 장기간 심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사건의 경우, 한 재판부가 책임감을 느끼고 깊이 있게 심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1심 재판부는 4번 바뀌었다.”

-항소한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 관리자로서,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험자로서 당연한 책무다. 흡연으로 인해 국내에서 매일 약 159명(2022년 질병관리청 담배폐해 보고서)이 사망하는 거로 추산되고 흡연 관련 각종 질환으로 막대한 건보 재정이 지출되고 있어서다. 2022년 기준 흡연으로 인한 건보 진료비 지출은 3조5917억원으로, 소송 제기 당시 산출된 비용(1조7000억원)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소송 자체가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 흡연 피해를 공론화하고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는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물론 승소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국민 건강과 공공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데 의미가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항소심 쟁점과 대응 전략은.

“항소심 재판 역시 ①담배회사의 제조물 책임 및 일반 불법행위 책임 ②흡연과 질병 간 인과 관계 ③공단의 손해배상청구권과 손해액 등 3가지 쟁점으로 나눠 진행 중이다. 최근 변론에선 첫 번째 쟁점에 대해 양측 공방이 오가고 있다.

공단은 과거 선행 담배소송과 각종 제조물 책임 사건에 경험 많은 법무법인을 새로 선임했다. 이들과 협업해 새로운 법리를 보강하고 보건의료 및 법학계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 항소심에 제출하는 모든 증거 자료와 법리들이 빈틈없이 검토되도록 재판부를 압박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문서제출 명령’이라는 소송 절차에 따라 담배회사 과거 내부 연구문서 일부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담배 제조 과정이 많은 부분 가림 처리돼 있지만, 다각도 분석을 통해 담배회사가 담배 제조·판매자로서 안전조치 책무를 다했는지, 첨가제 등을 통해 위해성을 높인 것은 아닌지 밝히고자 한다. 해당 문서들은 20년 안팎 경과된 것들이어서 영업 비밀로 보호할 가치 보다 밝히고자 하는 공공의 이익이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과 관계 입증을 위한 준비는.

“1심 선고 이후 고도 흡연자들에 대한 심층 연구를 진행했다. 과거 흡연 경험에 대한 심층 탐색을 통해 당시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채 대상자들이 담배에 중독돼 폐암 같은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연구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개별 인과 관계와 담배회사의 책임을 입증할지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송 대상자 증인 신문 신청과 같이 1심과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개별 인과성을 일부라도 인정받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향후 판결 전망과 상고 의향은.


“미국 연방정부 소송만 해도 1999년 처음 제기돼 2012년 최종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13년이 걸렸고, 캐나다 주정부 제기 소송은 2012년 시작돼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내 담배소송도 변론 진행 속도와 재판부 변경 등 유동적 요인이 있기 때문에 판결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항소심 선고가 나고 쟁점별 판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봐야 하겠지만, 또 전부 패소한다면 (대법원)상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공단이 자체 결정하기보다는 국내 전문가들과 협의, 회의체 논의 등을 거쳐 정할 것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들이 법원에서 제대로 판단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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