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배우 이선균, 뻔한 재난영화 '탈출'이 아프다
[김성호 기자]
배우 이선균이 떠나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수사과정에서 새어 나온 가십성 자료들, 이를 보도한 KBS 등 언론의 저질적 보도행태, 그로부터 실추된 배우의 이미지, 그 이미지와 연동된 여러 사업, 이를테면 기 계약된 영화와 광고가 받을 영향, 다시 그에 따른 법적조치 등과 관련한 것이었다.
혹자는 피해를 본 법인의 대표가 자의적 결정으로 피해를 묻는 소송을 하지 않으면 배임에 해당한다고 했다. 실제 작품 개봉이 연기되고 광고가 내려지는 상황은 고인에게 즉각적 위협으로 다가왔을 테다. 감당할 수 없는 피해액이 산정되고 소송으로 책임을 묻는 상황이 앞서 비슷한 마녀사냥식 재판 앞에 선 유명인에게 어떤 타격으로 작용했는지를 그가 모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지 7개월여가 흐른 지금, 생전 그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봉을 앞두었다는 말은 영화를 둘러싼 부정적 영향보다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반응이 더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그가 떠난 뒤 보낸 7개월의 시간은 그를 애도하고 추모하기에도 모자란 것이었다.
▲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
ⓒ CJ ENM |
김용화 느낌 팍팍 나는 재난 블록버스터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은 전형적인 재난 블록버스터다. 이선균이 아니었다면 한국 관객은 이 작품을 다른 이름을 통해 기억했을 테다. 바로 김용화라는 이름이다. 제작과 각본에 모두 참여한 김용화는 널리 알려졌듯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신과 함께> 시리즈로 유명한 인물이다.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비롯해 뚜렷한 흥행작만 네 편을 낸 유력한 영화인으로, 직접 설립한 덱스터 스튜디오는 CG기술에서 한국영화계를 선도한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런 김용화를 두고 일부 거부감을 표하는 이도 없지 않다. 김용화가 참여한 작품에선 유독 단순하고 개연성 떨어지는 스토리를 자주 접하게 된다는 뜻이겠다. 실제로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더없이 한국적인 성공스토리와 말초적으로 감동을 자극하는 연출이 쓰이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연달아 영화 흥행을 성공시켜 왔으니, 적잖은 영화 팬이 김용화적 문법이 언제까지 먹혀드는지 관심 갖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겠다.
▲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
ⓒ CJ ENM |
단순하고 선명한 재난 액션의 향연
이야기는 김용화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단순하고 선명하다. 안개 낀 어느 날 새벽, 공항대교 위에 개들이 풀려나온다. 그저 평범한 개들이 아니다. 유전자조작을 거쳐 사람을 죽이도록 고도로 훈련받은 군사용 개들이다. 해외 주문을 받아 국방부에서 비밀리에 키워내던 일명 '프로젝트 사일런스' 작전으로 기른 이 개들이 끝내 통제되지 않은 탓에 폐기를 앞두고 있었단다. 그런데 기상악화로 인한 사고에 휘말려 풀려나게 되었으니, 그 개들로부터 민간인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 이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되겠다.
주인공은 청와대 안보실 직원 차정원(이선균 분)이다. 행정관으로 급수는 높지 않지만 그는 자타공인 실세 중 실세다. 이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국가안보실장(김태우 분)의 심복이자 책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국에 영향을 미칠 선택의 순간마다 실장은 정원의 의견을 묻고 대부분 그대로 따른다.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정원 또한 제 길이 나라와 사회, 자신에게 옳은 것이란 데 추호의 의심이 없다.
▲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
ⓒ CJ ENM |
새로울 것 없는, 모자라지 않은
사건이 일어난 당일, 정원은 경민과 공항대로 위에 있다. 그곳엔 해외 여행길에서 귀국한 관광객들과 각자의 사정으로 해외로 나가려는 이들도 있다. 짙은 안개 속 연쇄추돌 사고로 멈춰버린 도로는 출동한 헬리콥터까지 사고를 일으키며 붕괴 위험에 접어든다.
도로 위에선 미쳐버린 개들이 날뛰고, 도로는 저 아래 바다로 당장이라도 추락할 듯 불안하기만 하다. 도로 한 쪽은 무너져 떨어지고, 다른 한쪽은 유독가스로 오가기 어려운 상황, 다리 위 생존자들을 두고서 실권자인 국가안보실장은 딴마음을 먹으려 든다.
▲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포스터 |
ⓒ CJ ENM |
지키지 못한 재능, 아깝고 아픈 배우
고립, 위협, 자구를 위한 노력, 이를 막는 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탈출까지가 영화의 주요한 얼개다. 처음엔 나쁜 사람처럼 보였던 정원이 조금씩 진실과 마주하며 거듭나는 과정이 드라마를 책임진다. 모든 걸 정치적 술수로써 이해했던 정원이 보다 본질적인 가치에 눈을 뜨는 것은 평이하긴 해도 여전히 먹혀드는 장치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복원하고, 국민에 대한 공직자로서의 신뢰를 지키는 데 반대할 관객은 없으니 말이다.
영화에 새로운 것은 드물다. 높은 다리 위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이종의 존재는 이미 수년 전 <혹성탈출>에서 만나본 것이다. 대선주자의 비겁한 결정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전투무기의 생성, 그 오류 따위도 여기저기 참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엔 분명하고 확실한 승부수가 있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존재, 이선균이다. 그를 더는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음을 아는 관객 앞에 영화는 그 존재를 여운 있게 포착해 내보인다. 그의 마지막 미소는 그저 영화 속 평이한 캐릭터 정원의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가 지키지 못한 아까운 재능이며, 받은 위로를 돌려줄 수 없게 되어버린 배우 이선균의 것이다.
그래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아픈 영화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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