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의 신앙으로 세상 읽기] 허비합시다!

2024. 7.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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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플랫은 책 '래디컬 투게더'에서 "오늘날 교회는 좋은 일을 하면서 본질을 잃어간다"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좋은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 말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허비하는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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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플랫은 책 ‘래디컬 투게더’에서 “오늘날 교회는 좋은 일을 하면서 본질을 잃어간다”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좋은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6절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이 장면은 잔치에 함께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왜 허비하느냐”고 질책할 때 예수님께서 대꾸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보면서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한다. 오늘날 교회는 경쟁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 그러나 그 좋은 일이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도 좋은 일인지 물어야 한다. 어느 카페 화장실에서 봤던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을 더욱 알고 싶어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드러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할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 안에,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는 능욕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여인이 잔치 자리에서 하고 있는 행동은 오로지 주님께 집중한 결과다. 사랑을 보지 못하면 사랑으로 하는 행동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 여인의 행동이 바리새인들에게 허비하는 것으로 보인 이유도 그렇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미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한 사람이 꽤 많다. 가슴이 뜨거워지면, 가슴이 차가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고아들을 위해 사역하는 케이티 데이비드가 쓴 책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하나님이 ‘내게 넘치도록 부어주신 사랑’에서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우리 딸들은 좋은 일이 생겨도 ‘엄마’라고 외치고, 슬픈 일이 생겨도 훌쩍거리며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심장이 마구 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늘 아버지의 심정도 그러하시리라!”

우리의 가슴이 뛰고 하나님의 가슴이 뛸 때 놀라운 사랑의 행동이 나타난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허비하는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말이다. 누가복음 7장에는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가리켜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머리카락으로 그 눈물을 닦고 있는 여인을 보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많은 죄가 사해졌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만큼 느끼는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많은 사랑을 보고 계셨다. 옥합을 깨뜨린 것은 그 사랑함의 결과물일 뿐이다. 사랑이 보이지 않으면 사랑으로 한 행동이 허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 십자에 달리실 때 그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허비한 사람들이지 허비함을 비난한 자들이 아니다. 신앙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뭔가를 허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저들은 왜 저렇게 허비하는가?”

(만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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