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책을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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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소설가 장강명씨 칼럼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또래 중년에게 책을 읽자고 했을 뿐인데 반론이 격하게 쏟아졌다.
후자 반응 중에는 '책 읽는 나를 신경쓰는 자는 속물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나는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 걸까,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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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소설가 장강명씨 칼럼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또래 중년에게 책을 읽자고 했을 뿐인데 반론이 격하게 쏟아졌다. 특히 두 부류가 발끈했다. 한편에는 독서 권유를 엘리트 중년 남성의 꼰대질로 받아들인 청년층이, 다른 편에는 독서가 개인과 세상을 구원한다는 식의 독서 실용주의를 혐오하는 애서가들이 포진했다. 후자 반응 중에는 ‘책 읽는 나를 신경쓰는 자는 속물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혼자 뜨끔했다. 허세형 독서라면 내 얘기 아닌가.
몇 년간 출판 담당 기자로 일한 뒤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됐다. 나는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 걸까,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걸까. 혹은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신간을 충동 구매하고 외출할 때 책을 챙기는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솔직한 자아는 독서를 고통스럽다고 느껴왔다. 밤새 1200쪽짜리 벽돌책을 끌어안고 자다 깨다를 반복한 날에는 내 문제가 난독증인지, 문해력 부족인지 헷갈렸다. 일로 하는 마감만 괴로운 것도 아니다. 실은 쉽고 어렵고 흥미롭고 지루한 모든 독서가 힘들었다.
내게 책 읽기는 본질적으로 고된 노동이다. 문자를 통해 시공간을 상상하고, 필자가 제안하는 감정과 논리를 따라가자면 에너지를 바닥까지 써야 했다. 그 과정의 어디쯤, 단행본 한 권을 끝내는 여정의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고비가 찾아왔다. 내 경험은 그랬다.
그러니 내가 책을 읽는다면 그건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다. ‘책 읽는 나’를 의식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최근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다. 비밀은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에 있었다. 인지심리학이 밝힌 심리적 현재는 3초. 뇌과학은 현재의 자아를 다른 속도의 오감을 통합하는 “2초짜리 출입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경험하는 행복의 시간적 한계는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행복한 3초를 이어붙인다고 행복한 삶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에 저장해뒀다가 미래에 소비하는 행복, 다시 말해 “되새기는 행복, 불러내고 기억하는 행복,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행복”을 추구한다. 이런 해석의 연장선에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벽돌책을 읽는 건 심리적으로 타당한 행동이 된다. ‘책 읽는 나를 되새기는 행복, 책 읽는 나를 불러내고 기억하는 행복, 책 읽는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3초의 행복이 아니라 바람직한 삶의 내러티브를 완성해나가는, 되돌아보는 행복이다.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 그 이야기를 평생 반복해서 듣게 될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왜 하필 고통인가. 뇌과학은 고통과 쾌락이 뇌의 같은 부위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원리는 저울추에 비유된다. 쾌락이 균형을 깨면 고통이란 반동이 온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의 반작용, 일종의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다. 감자칩 한 봉지를 먹어치우거나, 초자극 소셜미디어에 빠져 시간 순삭을 겪은 뒤 찾아오는 불쾌감을 떠올려보라.
뒤집으면 해법이 된다. 고통이 쾌락의 대가라면 쾌락을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등산이 즐거운 건 등산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책이 즐거운 건 책을 읽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디면 즐거움이 온다. 경험하는 자아가 견디면 기억하는 자아가 행복해진다. 때로 이해도 못하는 책들을 내가 꾸역꾸역 읽어온 이유인 듯하다. (참고한 책 : ‘최선의 고통’ ‘도파민네이션’ ‘나라는 착각’)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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