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리 국회, 잘하고 있는 걸까

2024. 7. 23. 00: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상훈 정치학자

22대 국회는 강한 국회여야 한다는 요구와 주장으로 출발했다. 빠른 산업화를 위한 ‘강한 국가론’,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한 ‘강한 대통령론’은 있었지만, ‘강한 국회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권력분립의 한 축을 형성하는 국회가 좀 더 강하고 활력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간 우리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발전시키는 길’이 아닌 ‘대통령직을 권력화하는 길’로 치달아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치체제가 지금처럼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몇몇 인물들의 불합리한 야심과 불완전한 개성에 크게 좌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의회정치와 정당정치가 좀 더 발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변화, 그래서 대통령직도 안정된 권력분립의 기반 위에서 균형 있게 수행되는 변화, 우리에게는 그게 필요하다.

「 ‘강한 국회’를 앞세우는 22대 국회
견제와 함께 균형 있어야 권력분립
국회가 사법부나 검찰 역할 해서야
의회주의자가 이끌어야 강한 국회

그런 기대에 지금 국회가 잘 부응해 가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긍정적이기 어렵다. 국회를 집권 대통령에 반하는 다수당의 제도적 진지로 만들려는 욕구만 보이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이 ‘함께’가 아니라, 균형 ‘없는’ 견제만 있으면 그 또한 문제다. 지금 우리 국회는 권력적으로는 더 강력해졌는지 모르나, 민주적으로는 더 취약해지고 불신받는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민주주의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일을 세 정부 부서가 나눠서 맡는 정치의 체제를 가리킨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일을 한 정부 부서가 다 맡는다면 전제정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문제에 대한 판관이자 집행관을 자신이 맡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견제의 목적은 균형에 있다. 견제만 있고 균형이 없으면 정치체제는 작동 불능상태에 빠진다. 세 부서 모두 무한정의 자유와 권력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일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반대하려는 방편으로만 강한 국회를 말한다면, 야당이 집권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팬덤 당원들의 희망대로 대통령 탄핵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때 등장할 새 대통령이 국회나 야당을 존중할 이는 아닐 것이다. 야당일 때는 ‘국회 중심’을 주장하고 집권하면 ‘대통령 중심’을 옹호하는 일만 또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도, 국회도, 야당도, 검찰도 ‘제한된 제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다. 대통령직을 권력 삼아 개인의 야심을 실현하려는 것도 잘못이고, 한 정당의 지배 당파가 국회를 독점해 행정부와 사법부를 제압하려는 것도 잘못이며, 국가를 대신해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이 당파적 도구가 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입법과 행정, 사법의 기능이 균형 있게 작동하는 ‘민주적 입헌체제’에 있다.

국회는 ‘권력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중대 의제를 심의하고 조정하는 일에서 유능한 국회여야 한다. 시민 집단 간 이익 갈등을 조정하고 경쟁에서 밀려난 열패 집단들을 보호하고 통합할 방안이 일상적으로 토론, 숙의되는 국회가 강한 국회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부 의원의 행태가 자유롭게 허용되는 것이 좋은 국회일 수 없다. 품위를 잃지 않고 논쟁하고, 얼굴 붉히지 않고 반대 토론하며, 대화와 조정을 합리적으로 이끄는 의원들이 존중받아야 강한 국회다. 정치적으로는 책임감 있고, 정책적으로는 유능하며, 민주적으로는 다원주의의 가치가 흘러넘치는 활력 국회가 진정으로 강한 국회다.

언론과 지식사회, 시민사회 어느 곳을 보더라도 과도할 정도로 파당화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를 자극하는 몇몇 의원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일 정도의 당파적 행태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의원들이 저질 유튜브나 팟캐스트, 종편에 출연하는 일을 좋게 볼 수 없다. 의원이라면 모름지기 ‘합리적 여론 형성자’여야 하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곳을 토론 불가능한 세상으로 분열시키는 ‘공론장의 파괴자’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들이 지금처럼 방치되면 강한 국회는커녕 ‘국회의 포퓰리즘화’만 심화시킬 것이다.

권력화된 팬덤 당원들의 부당한 요구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강한 국회다. 악성 팬덤 당원들의 강요에 의원들이 용기를 잃고 국회가 자신감을 상실하면 입법부와 정당은 누군가의 처벌에 골몰하는 ‘유사 사법부’나 ‘특별한 검찰’에 가까워진다. 국회는 의회주의자들이 주도해야 한다. 진리란 여야 어느 한 편이 아니라 여야 사이에 있다고 믿기에 대화와 타협의 규범을 준수하는 의원들이 이끌어야 한다. 팬덤의 획일적 의견에 지배되는 국회는 악몽 가운데 무서운 악몽이다.

우리는 서로 달라서 민주주의를 한다. 일상적으로 교섭하고 타협하고 조정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넓게 협력할 방법을 찾아줘야 국회답다. 달라서 고통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달라서 더 풍요로울 수 있음을 보여 줘야 강한 국회다. 지금 국회가 그런 길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