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잃어버린 세대’에서 청년 구하기
요즘 청년 취업 시장이 안 좋다.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20대 대졸자가 올해 상반기 월평균 59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00명 늘었다. 고교 졸업자를 포함해 최종학교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린 기간이 올해 13.9개월로 지난해(12.3개월)보다 길어졌다. 그만큼 일자리 얻기가 힘들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의 어려움은 외신에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로 부를 정도로 세계적 현상이긴 하다. 이는 청년의 인적자본과 노동시장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 탓이 크다. 우리 청년을 ‘잃어버린 세대’에서 구할 방도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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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구직 없는 20대 대졸자 59만 명
4~5년 버티면 상황 나아질 수도
‘육아퇴직’ 등 은행권 시도도 주목
」
인구경제학자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출간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2000년 이후 가파른 출생아 수 감소의 결과로 2020년대 말부터 취업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의 수가 빠르게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 청년 고용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낙관적인 소식이다. 일본에선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입도선매식으로 사람을 뽑을 정도로 기업의 구인난이 심각하다. 이 교수는 “기업의 노동수요가 어떻게 바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신중하게 답했지만, 적어도 노동 공급 측면에선 구직자 대열이 앞으로 팍팍 줄어든다. 1990년대 말 출생아는 연 65만 명 선이었고, 이들이 지금 노동시장에 나온다. 2000년 이후 출생아 수는 급격히 줄어 40만 명대로 떨어졌고, 요즘은 20만 명대다. 2050년 이후에는 젊은 취업자 수가 현재의 절반 아래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2020년대 말부터 시작되는 이런 추세는 구직자 입장에선 흐린 구름 사이로 비치는 희망의 빛(silver lining)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4~5년만 ‘존버’하면 구직시장이 좋아질 수 있다. 한두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지금의 힘든 시기를 자신의 인적 자본에 더 투자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기업도 시계(視界)를 넓힐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일하는 청년이 귀해진다. 물론 고령 노동자도 과거에 비해 건강하고 학벌 좋고 능력 있으니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터에서 청년이 줄어들면 무엇보다 조직의 활력이 떨어진다. 청년은 상대적으로 학습능력과 적응력이 좋고 혁신 친화적이다.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의 선봉에 선 것도 젊은 남성이었다. 당장 힘들어도 요즘같이 사람 구하기 좋을 때 청년 인재를 꾸준히 넉넉하게 채용하면 중장기적으로 인사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자체가 사회공헌임은 물론이다.
국민은행·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도입한 ‘육아퇴직’도 주목할 만하다. 영·유아기 자녀를 둔 정규직 직원이 일정 기간 퇴직 후 경력직으로 다시 입사하는 제도다. 법으로 보장된 출산·육아휴가(2년)와 육아퇴직(3년)을 합치면 5년간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선 경직된 인력 운용의 숨통을 터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고, 신규 인력을 채용할 여유도 생긴다. 농림부 관료 출신인 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은 2년 전 중앙일보 기고에서 기존 근로자의 휴직을 늘려 신규 채용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1990년대생의 취업난을 최소화해 이들을 일본의 1970년대생 같은 ‘잃어버린 세대’로 만들지 말자는 아이디어였다. 1~2년의 단기 경영실적보다 중장기 성장과 지속가능한 경영을 원하는 뚝심 있는 기업인이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런 일이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건 정부의 몫이다. 청년 구직자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취업 훈련과 단기 일자리 경험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줄어드는 청년이 적재적소에 귀하게 쓰일 수 있도록 교육과 노동시장부터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결국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이 청년 구직난의 ‘깔딱고개’를 넘는 데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용산 대통령이나, ‘여의도 대통령’이나 여기엔 별로 관심들이 없는 것 같다. 말은 넘쳐나는데 진전이 없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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