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조원 날린 '천재 코인왕'…"감옥도 그에겐 징벌 아니다" 왜 [강남규의 직격인터뷰]
강남규의 직격인터뷰 - '월가 금융 작가' 마이클 루이스 - 『머니볼』 『빅숏』 『고잉 인피니트』 저자
■
「 ‘코인 왕’ 샘 뱅크먼-프리드 스토리
『고잉 인피니트』 제목으로 출간
법규·윤리 무관심한 물리학 수재
분산투자 맹신했다 한순간 몰락
미 국채, 다음 위기 방아쇠 될 수도
부실화 땐 글로벌 금융시스템 흔들
」
SBF는 돈의 세계에서 ‘추락한 천사’다. 스타에서 빌런이 됐다. 이런 캐릭터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작가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빅숏』의 작가 마이클 루이스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스가 SBF를 해부한 『고잉 인피니트(Going Infinite)』를 내놓았다. 중앙일보가 한국어판 『고잉 인피니트』의 출판을 계기로 루이스를 화상 인터뷰했다.
“법 위반했지만 나쁜 놈은 아니다”
Q : 지금까지 금융 논픽션 작가로서 밟아온 여정 가운데 『고잉 인피니트』는 어떤 의미일까.
A : “내가 머니게임 이야기만 쓴 게 아니다. 『머니볼』 등은 금융 세계와 직접 관련이 없다. 『고잉 인피니트』는 『라이어스 포커』와 『빅숏』, 『플래시보이(Flash Boy)』처럼 월가 이야기다. 그러나 금융세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새로운 캐릭터로 가득하다. 모든 작품이 인물과 스토리가 모두 다르다. 책을 쓸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 든다. ”
Q : 『고잉 인피니트』 속 SBF는 아주 다면적인 캐릭터인 듯하다. 직접 만나 대화하고 관찰해본 작가가 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 “SBF는 아주 복잡한 느낌이 드는 캐릭터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그가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 눈에 비친 그는 ‘나쁜 놈’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 사법부의 판단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Q : 형량이 지나치다는 말인가.
A : “그가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교도소에 가야 한다는 것은 동의한다. 다만 25년 동안 감방에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판사는 SBF가 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에 25년 형을 선고한다고 했는데,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다.”
Q : SBF가 사회를 위협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A : “판결문을 보면 판사는 SBF가 사회를 ‘위협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협하기’ 때문에 장기간 격리한다고 했다. 앞으로 위협할 수 있어서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법규와 월가 관행 때문에 그는 더 이상 금융계에서 일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회를 위협할지 의문이다.”
Q : SBF가 법을 어기기는 했지만 나쁜 놈은 아니라고 했는데, 좀 모호하게 들린다.
A : “그는 법규나 관행에 무관심했다. 통상적으로 인정된 윤리에 대해도 무심했다. 이는 분명 잘못이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월가의 유명한 금융가뿐 아니라 워싱턴의 정치인,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 등 똑똑하다는 인간들이 모두 그를 좋아했다. 정말 의아했다.”
외부 세계 의식하지 않는 젊은 천재
Q : 돈을 잘 써서 그런 것 아닐까.
A : “SBF가 암호화폐 세계를 위해 정치인 등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SBF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다. SBF를 무턱대고 미워하면 그의 스토리를 통째로 놓칠 수 있다. 그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지적인 측면에선 수긍할 수 있는 젊은이다. 사회적으로는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윤리체계를 가진 인물이다.”
Q : 용납할 수 없는 윤리체계라니.
A : “그가 미국에 송환돼 가택연금 상태일 때 만났다. 그의 부모는 거의 패닉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했다. 외부 세계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교도소 수감 자체가 그에게는 징벌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인터넷을 하지 못한다는 점만 괴로울 것이다.”
SBF 부모는 모두 미 서부 명문대학인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다. SBF가 지식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희대의 금융사기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미 사회에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
한편, 마이클 루이스는 학부(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 초까지 가장 현란한 채권 트레이딩을 벌인 투자은행 샐러먼브러더스에 들어가 머니게임 현장을 경험했다.
Q : 샐러먼브러더스 출신인 존 메리웨더와 존 굿프렌드 등이 1998년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롱텀캐피털 사태 주인공이었다. 이들과 SBF의 캐릭터를 비교한다면.
A : “좋은 질문이다. 롱텀캐피털이 붕괴했을 때 메리웨더 등이 나를 불러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 책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뉴욕타임스(NYT)의 매거진에 길게 기사로 썼다. 무엇이 롱텀캐피털을 무너뜨렸는가를 쓴 것이다.”
“분산투자 허상에 당해”
Q : 양쪽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A : “롱텀캐피털 주인공들과 SBF는 모두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양쪽 모두 비극의 순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가 아주 잘 분산돼 안전한 줄 알았다.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있는 자산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Q : 그 결과는 어땠나.
A :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로 롱텀캐피털이 사들인 주요 나라 국채 가격이 동시에 떨어졌다. SBF의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는 가상자산도 어느 순간 동시에 하락했다. 그 바람에 파국을 맞았다.”
Q : 월가의 금융 스캔들 주인공 가운데 SBF와 비슷한 캐릭터가 있을까.
A : “정크본드 황제 마이클 밀켄이다. 밀켄은 정크본드 게임을 아주 공격적으로 빠르게 펼쳤다(이때 정크본드 주요 매수자가 미국식 저축은행 대부조합이었는데, 결국 줄줄이 파산해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SBF의 머니게임 속도도 빨랐다. 동시에 법규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다. SBF는 인류를 멸종에서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이런 캐릭터와 확신 때문에 SBF의 머니게임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going infinite’)는 게 루이스의 부연설명이다).”
“AI 버블 붕괴는 찻잔 속 태풍”
루이스는 금융 논픽션 작가로 위기를 일으킨 인물들을 직접 만났다. 『라이어스 포커』와 『빅숏』 등에 위기로 이어진 머니게임 실상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금융 메커니즘을 잘 모르면 할 수 없는 묘사다. 이런 그의 눈에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Q : 뉴욕 주가가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탄탄한 흐름이다. 금융 논픽션 작가의 눈에 다음 위기를 야기할 방아쇠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들어오는가.
A : “요즘 눈덩이처럼 불어난 미국 재무부 채권(국채)이 불안 불안하다. 2008년 위기 등을 보면 미 정부가 나서서 진정시켰다. 그런데 미 정부의 재무상태가 이자와 원금을 지급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
Q : 뜻밖이다. 빅테크와 인공지능(AI) 주가가 버블 증상을 보인다고 경고할 줄 알았는데.
A : “AI 주가가 버블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빅테크나 AI 버블이 붕괴한다고 해도 주식시장이 좀 흔들릴 뿐이다. 미 국채는 달러와 함께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거대 펀드 등의 기초자산이다. 이런 미 국채가 부실화하면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 위기의 구세주가 사라지는 셈이다.”
Q : 미 국채 안정성은 대통령이 누구인가에도 민감한데.
A : “(총격 등) 최근 사건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은 정신적으로 손상됐다(mentally impaired)고 생각하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정신적으로 하자가 있다(mentally damaged). 그렇다고 미국이 망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이겨냈듯이 앞으로도 이겨낼 것으로 본다.”(바이든은 이 인터뷰 뒤인 21일(현지시각)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마이클 루이스=1960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업에 속한 변호사였다. 프린스턴대학에서 고고학과 예술사를 공부한 뒤 1985년 영국 LSE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채권 전문 투자은행 샐러먼브러더스에 들어가 나중에 롱텀캐피털 사태를 일으킨 존 메리웨더 등과 일했다. 그는 “월가 생활이 참 지루했지만 연봉은 작가 수입보다 5배 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샐러먼브러더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라이어스 포커』는 그를 영어권 너머 글로벌 차원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강남규 국제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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