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기후재앙 막으려면 '녹색 프리미엄 가격제' 도입해야

장세정 2024. 7. 2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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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 정내권] 어떻게 기후위기 극복할 것인가?


장세정 논설위원
폭우·폭염·산불 등 기후재난이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극한 기상에 따른 기후 재앙이란 말이 나오면서 탄소배출량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는 요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2023년 1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두바이 기후변화 총회(COP28)'는 각국이 2015년 파리기후협약 체제에 따라 서약한 '국가 감축 목표치(NDC)'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기후 위기는 어느 한 나라가 주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 80억 인류가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야 재난을 줄이고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유엔을 필두로 각국 정부와 기업의 주도적 역할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 폭우·폭염 등 현실이 된 기후 위기
정부·기업 주도 하향식 해법 한계
소비자들 자발적 동참 절실해져
'녹색 에너지' 비용 더 지불해야

2005년 기후위기를 경제성장의 기회로 전환하는 녹색성장(Green Growth) 개념을 유엔에서 처음 제시한 정내권(70) 초대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2008-2010)를 만났다. 1977년 외시 10회로 공직에 입문해 1991년 외교부에 환경외교를 담당하는 과학환경과 신설을 주도한 그에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해법을 물었다.

정내권 외교부 초대 기후변화 대사는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 앞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기후 재앙을 막으려면 녹색 전기에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등 소비자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종호 기자


정부·기업은 물론이고 소비자 참여 필요
-인류의 기후위기 대처 방식은 적절한가.

"현행 기후변화 대응 체제는 생산부문의 탄소 배출량 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와 기업이 이를 실행하는 하향식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와 산업 전반의 틀을 바꿔야 하는 탈 탄소 에너지 전환에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탄소중립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원론적 담론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탄소중립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끌어내야 한다."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은.

"값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총량 극대화를 추구하는 지금의 경제 운용 방식의 필연적인 결과다. 성장의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경제 운용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산부문에서 정부와 기업 주도의 하향식만이 아니라 소비부문에서 탄소배출량 감소를 동시에 추구하는 상향식의 소비자 참여 접근법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소비자의 참여 없이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어떻게 질적 성장으로 전환이 가능할까.
"양적인 성장은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인 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에 상관없이 생산량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반면, 질적인 성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면서 생산량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성장 방식이다. 이를 위한 가장 간단한 시장적 접근 방식은 탄소에 가격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정부와 기업은 경제에 대한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 경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기술혁신과 고용창출 등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 녹색성장이다. 2005년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ESCAP) 환경개발국장 시절 내가 제안했다."

2021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딕시' 때문에 한 주택이 불타는 모습. [AFP]

-정부가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이행하는 방식으로 시행해 왔다. 이런 일방적인 하향식에서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상향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의 다양한 정책 수단 도입은 필수 불가결하다. 하지만, 질적인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정부의 일방적 강요로만 될 수 없다. 녹색 에너지와 '탄소 프리(Carbon Free)'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한데.
"물론 모든 소비자가 추가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에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추가비용을 자발적으로 지불하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48%의 소비자가 추가 비용 지불 의사를 표명했다."

젊은 소비자들의 환경 인식 변화 주목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파타고니아라는 패션 브랜드는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로 생산한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상당수 소비자가 자신들의 우려에 공감하는 회사의 제품에 비싼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자발적인 녹색 프리미엄 전기 가격이 도입되면 앞장서서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다른 아파트 대표는 '저 아파트 가격 올라가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를 보면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 상당히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폭염에 이어 폭우까지 이어지면서 채소값이 급등한 가운데 지난 16일 대전의 한 농산물도매시장을 찾은 시민들. 극한 기상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기후플레이션'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녹색 에너지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는데.
"지금의 경제구조에서는 그렇다. 녹색 에너지와 탄소 프리 제품에 대한 프리미엄 가격을 도입해 더 높은 가격을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가격 차별화 제도가 필요하다. 예컨대 독일처럼 탄소 배출 없이 여행하고 싶은 소비자가 고속철(KTX) 승차권에 약간 더 높은 가격의 '녹색 승차권'을 살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보자. 이렇게 지불된 추가 비용은 재생에너지 구매에 투입되도록 할 수 있다."
한국은 외국과 비교하면 전기료가 특히 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 최하위 수준이다. 값싼 에너지를 흥청망청 쓰고 효율도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은 값싼 전기 가격에 중독돼 있다.
"전기 가격에도 녹색 프리미엄 가격제 도입을 검토할 때다. RE100(재생에너지 전기 100%)에 참여하는 우리 기업들이 녹색 프리미엄 전기 가격을 지불하는 경우 재생전기를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도 가능할 것이다. 녹색 프리미엄 전기 가격 지불이 기업의 ESG 경영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소비자의 참여만으로 질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소비자의 참여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 중에는 점진적 방식으로 탄소 비용을 반영해 경제와 산업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기술 혁신과 고용 창출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정책 수단들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은 체코에 24조원 규모의 원전을 건설할 우선협상자로 최근 선정됐다. 유럽연합은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했다.[연합뉴스]


탄소배출 감소를 예타에 적용해볼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가능할까.
"가장 간단하면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조치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대규모 투자 사업에 적용하는 예타 조사에 탄소배출량 증가를 비용으로, 감소를 편익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예타와 관련 논란이 많았으나 만일 GTX 예타에 GTX 운행으로 줄어들 탄소 감축량을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으로 환산해 편익으로 포함했다면 오래전에 예타를 통과해 이미 운행되고 있을 것이다. 예타에 탄소 편익을 반영하면, KTX 등 다양한 녹색 교통 인프라 투자가 증진돼 국내 전체 탄소 배출량의 20%를 차지하는 운송 부문의 탄소배출량 감소와 교통혼잡비용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세금을 통한 유인책은 없을까.
"소득세와 법인세를 깎아 준 만큼만 탄소세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경제에 대한 세금 부담 총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탄소 감축에 대해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금 총량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나 개인들도 조세 저항의 근거가 없다. 이것이 '환경 세제 개혁'이다. OECD는 이렇게 하면 탄소 배출이 줄어들고, 경제성장과 고용은 늘어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독일이 1999~2004년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정 초대 대사는 정부의 강요가 아니라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한 책임 분담이라는 인식에 기초해 지구 시민으로서 나부터 추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나부터(Me First) 운동'이 사회 각계각층에 퍼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4월 17일 방탄소년단 (왼쪽부터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MAP OF THE SOUL : PERSONA)' 발매 기념 글로벌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뉴스1]

-한국이 소비자 운동을 주도할 수 있을까.
"아직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사회 운동은 없다. 국제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K팝 스타 BTS의 전 세계 수백만 아미들이 자발적으로 녹색 에너지와 탄소 프리 제품을 구매하는 나부터 운동을 벌인다면, 지구촌 소비자들의 자발적 책임 분담 운동에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K팝 위주의 한류가 기후 한류(K-Climate)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BTS 아미들이 '기후 한류' 선도하길
-윤석열 정부에 조언한다면.
"생산부문 위주의 하향식인 현행 파리기후협약체제의 의무 이행에 급급하기보다는 정책 초점에 변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탄소 프리 에너지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녹색 프리미엄 가격제를 구축해야 한다. 시장 확대를 통해 탄소 중립과 기업 비즈니스의 윈윈 관계 구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향식 접근방식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국제적 기후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란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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