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의약 포커스] 고품질 저가약 쓰게 하고 환자 부담금도 확 낮춰야
국내 복제약 시장의 고객은 누구인가. 의약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환자라고 생각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정답이다. 그러나 한국은 의사나 약사, 그중에서도 주로 의사가 복제약 경쟁의 혜택을 얻는다. 국내 복제약 제약회사의 고객은 환자가 아니라 의사이다.
미국은 복제약이 가격 경쟁을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홈페이지에 공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신약이 독점하던 시장에 복제약이 1개 나오면 평균적으로 신약 가격의 60%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복제약이 5개 시장에 진입하면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서 원래 신약 가격의 20% 정도로, 복제약이 10개면 신약 가격의 5%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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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복제약 나오면 약가 하락
한국은 복제약 가격 경쟁 없어
의사에게 리베이트 관행 끊으면
환자·건보공단 모두 혜택 누려
」
복제약 고객이 의사가 되어버린 왜곡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복제약이 많아져도 경쟁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히려 가격이 높을수록 판매량이 더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복제약 사용량은 전체 의약품의 52%이고 복제약 약품비는 전체 약품비의 25%를 차지한다. 반면 한국의 복제약 사용량은 전체 의약품의 49.7%이고 복제약 약품비는 전체 약품비의 43.8%이다. OECD의 다른 회원국과 달리 비싼 복제약이 많이 판매된다.
왜 그럴까. 일반적인 제품은 소비자가 돈을 내고 제품 선택을 하고 제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경쟁 제품이 많으면 제조사는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가격 인하 등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의약품 대금은 환자와 건강보험이 낸다. 환자의 본인 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의 공단 부담금을 합한 것이 의약품 대금이다. 의약품 선택은 의사나 약사의 영향이 크고 의약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권한이 결정적이다. 의약품 사용은 환자가 하지만, 제약회사는 의사나 약사의 선택을 받기 위해 리베이트 등 혜택을 제공한다.
이 중에는 현금을 뒷돈으로 주거나 영업사원이 의사를 골프장에 차로 데려다주는 등 위법한 리베이트도 있고,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는 혜택도 있다. 어떤 혜택이든 그것을 제공하는데 돈이 든다. 그 돈은 약값에서 나온다.
정상적인 시장의 가격 경쟁 압력이 국내 복제약 시장에서는 리베이트 경쟁 압력으로 변질했다. 복제약 경쟁이 치열할수록 의사나 약사에게 제공되는 혜택은 많아지지만 정작 의약품을 사용하고 돈을 내는 소비자에게는 경쟁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가야 할 혜택을 의·약사와 제약회사가 가져가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복제약 시장이 훨씬 크지만 복제약 영업사원이 거의 없다. 한국은 복제약 영업을 업무로 하는 영업사원과 의약품 판촉영업자(CSO), 도매상 등이 많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가격 경쟁이고 한국은 리베이트 경쟁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이미 2008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연구보고서인 ‘건강보험 약가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윤희숙 저)’에서 제시됐다. 보고서에서는 해결 방안도 나와 있다. 복제약의 생물학적 동등성을 확보한 후 제약회사들이 가격을 제출하면, 건보공단이 원칙적으로 최저가 복제약을 건강보험에서 급여(보험 적용)하는 방안이다. 최저가가 아닌 의약품을 사용하고자 하면 환자의 자비로 부담하도록 한다. 건강보험에서 급여가 안 되면 환자 부담이 많이 커지므로 의사나 약사가 가격이 높은 복제약을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OECD 평균보다 복제약가 비싸
하지만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반대했다. 복제약이 신약과 동등하다고 신뢰할 수 없고, 품질이 나쁠 수 있는데 최저가를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고 공급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런 이유로 복제약 경쟁의 혜택이 소비자가 아닌 의사나 약사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계속 유지됐다. 거의 매년 리베이트 사건이 적발됐다. 처벌하고 제재 수위를 높였지만, 리베이트는 점점 음성화되고 지능화됐다.
지난 2022년 보건경제정책학회 학술대회에서 복제약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가격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개선안이 제안됐다. 건보공단에서 복제약이 많은 시장의 복제약 가격, 품질, 공급 안정성을 평가하여 몇 개의 복제약을 선별한다. 선별 복제약은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일반적인 경우인 30%보다 훨씬 낮은 5% 등으로 낮추는 혜택을 주고 홍보한다.
제약회사는 여기에 들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지만 선별 약이 되면 판매량이 늘어서 박리다매로 이윤을 얻을 수 있다. 환자는 건보공단에서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확인한 복제약을 매우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복제약 선별해 저렴하게 공급해야
환자가 지불하는 본인 부담금은 가격에 본인 부담률을 곱한 것이다. 복제약이 선별 약이 되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고 본인 부담률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낮추면 환자 부담이 줄어든다. 복제약 1달분 가격이 10만원, 본인 부담률이 30%라면 환자가 3만원, 건보공단이 7만원을 부담한다. 건보공단의 선택을 받기 위해 복제약 가격을 5만원으로 낮추고 선별 복제약의 본인 부담률을 5%로 하면, 환자는 2500원, 건보공단은 4만7500원을 부담한다. 환자뿐 아니라 건보공단도 이득이다.
이것을 아는 환자는 의사가 선별 복제약을 처방하길 바랄 것이다. 복제약은 성분이 동일하고 선별 복제약은 건보공단에서 품질도 확인했으므로 의사가 선별 복제약을 애써 처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약회사는 복제약 가격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는 대신 의사나 약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고 판매량을 늘려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품질 좋고 저렴한 복제약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제약회사들이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어 국내 시장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 시장에서 복제약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이상 고착된 구조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이해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달리는 차의 바퀴를 바꾸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과 같은 의약품 리베이트 구조를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젊은이가 제약산업에 취직한 후 환자가 아닌 의사나 약사에게 혜택을 주는 업무를 하도록 계속 방치할 것인가. 어렵더라도 목표를 잃어버리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박성민 변호사·서울대 약대 의약품 정책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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