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성찰한 예술가, 빌 비올라
이것은 마치 영화 또는 연극 속 한 장면 같습니다. 화면 왼쪽엔 침대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노인이 보이고, 그를 두고 떠나는 듯한 젊은 부부가 노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집 밖으론 배에 짐을 실으며 떠날 채비하는 사람들이 보이고요.
빌 비올라의 영상 작품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의 다섯 개 영상 중 하나인 ‘여정(The Voyage)’의 한 장면입니다.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비올라 전시에서 이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스산함이 잊히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죽음과 함께 인생의 여정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요. 노인은 세상을 떠나고, 젊은 사람은 그들의 길을 떠난다는 얘기를 전한, 고요하고 강력한 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현관 밖에 혼자 벽에 기대앉아 있는 남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안으로 몰래 들어가 있는 작가 비올라 자신입니다. 비올라는 10년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바로 나”라며 “그곳이 바로 제가 사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그곳’은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입니다.
지난 12일 ‘비디오 아트의 거장’ 비올라가 별세했습니다. 향년 73세, 사인은 알츠하이머 합병증이었습니다. 비올라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 고통과 초월 등 인류의 오래된 주제를 시적인 영상으로 표현해온 작가입니다. 그는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여섯 살 때 호수에 빠져 죽을 뻔했던 경험을 빼놓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때 물속에서 본 푸른 빛, 아름다운 세상을 잊지 못한다”라고요. 이후 “1991년 어머니의 죽음과 둘째 아들의 출생, 1999년 다시 아버지를 떠나보낸 일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올라는 늘 ‘삶과 죽음 사이’ ‘그 어슴푸레한 경계’를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숲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장면을 30분 동안 보여주는 영상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의 ‘행로(The Path)’ 역시 이승과 저승 사이, 시작도 끝도 없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시간’입니다. 그의 대표작 대부분은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방법으로 그동안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응시하게 했습니다. 비통함에 빠진 남녀 다섯 명의 표정을 45초 동안 촬영해 15분 분량으로 재생한 ‘놀라움의 5중주’(2000)도 그런 작품입니다.
그가 삶의 영적(spiritual)인 면을 드러내는 방법은 명확합니다. 주변의 평범한 것들을 ‘시간을 들여’ 아주 고요하게, 집중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의 ‘여정’을 보면, 나중엔 노인도, 젊은 부부도 떠나고 보이지 않습니다. 현관 밖에 앉아 있던 그 남자 비올라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상이 시작되듯이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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