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만 장악한 차세대 반도체 기판, 삼성전기가 AMD 공급 뚫었다
삼성전기가 AMD의 AI 데이터센터에 고성능 반도체 기판을 공급한다.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기판인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는 기판 중에서도 고성능·고수익 사업이지만, 그동안 일본과 대만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삼성전기가 글로벌 대형 고객사를 잡고 본격 시장에 진입해 이들과 경쟁하게 된 것이다.
22일 삼성전기는 AMD에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용 FCBGA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란, 고성능 연산을 위해 10만 대 이상 서버를 초고속 네트워크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를 일컫는다. AMD가 이 시장을 확장하면서 삼성전기의 손을 잡았다.
반도체 기판은 그 위에 칩을 올려놓고 전기를 연결하는 받침판으로, 요구되는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분야였다. 그러나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드는 집적화·미세화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기판 등 반도체를 연결·포장하는 패키징 기술이 차세대 반도체 혁신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 프리스마크에 따르면, 기판 시장은 연평균 7%씩 성장해 2028년 20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FCBGA는 수많은 미세 와이어 대신 금속 공(솔더 볼)으로 칩과 기판을 연결해, 기존보다 더 많은 칩을 연결하고도 전기신호 전달 속도는 높인 기판이다. PC나 게임콘솔 같은 완제품(세트)과 일반 서버에 들어가는 FCBGA는 팬데믹 이후 이런 제품의 교체 수요가 줄어들면서 한동안 공급 과잉 상태였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용 FCBGA는 PC용보다 넓이는 10배 이상에 칩을 쌓는 층수도 3배 이상이라, 기술 장벽이 높은 고성능·고부가가치 사업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등하면서 FCBGA도 주목받는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AMD의 데이터센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성장했고, 올해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처리장치(GPU) 매출이 예상치를 넘겨 40억 달러(약 5조5500억원)를 초과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는 FCBGA를 포함해 플립칩(FC) 기술을 적용한 기판·조립 등 패키징 시장 규모가 2024년 383억 달러(약 53조원)에서 2033년 680억 달러(약 94조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기판 면적을 넓히고 그 위에 칩을 쌓는 층수도 늘리면서, 칩 무게에 눌려 기판이 휘는 것은 데이터센터용 FCBGA가 해결해야 할 주요 기술적 난제 중 하나다. 삼성전기는 “AMD와 협력으로 첨단 데이터센터용 고밀도 상호 연결을 구현한 기판을 개발했다”며 “기판 휨 현상을 해결하고, 높은 생산 수율도 확보했다”라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FCBGA 생산라인에 실시간 데이터 수집 및 모델링 기능을 더해, 신호·전력·기계적 정확성을 높였다. 삼성전기는 그동안 FCBGA 기술에 1조9000억원을 투자해 왔다.
데이터센터용 FCBGA는 일찌감치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와 기술 협력을 해온 일본 이비덴(Ibiden)이 엔비디아 GPU용 FCBGA를 공급하며 업계 1위이고, 대만 유니마이크론과 일본 신코 등이 뒤를 잇는다. 삼성전기는 PC나 게임 콘솔 같은 세트용 FCBGA를 생산해 오다가, 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데이터센터용 FCBGA로 사업을 고도화하며 이들과 본격 경쟁을 벌이게 됐다. 삼성전기의 3대 사업(MLCC, 카메라 모듈, 패키지) 중 패키지는 회사 매출의 20% 안팎을 차지한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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