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美 피아니스트, “쇼팽을 배우러 한국으로 오라”
1974년 서울 국립극장. KBS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이 지휘자 홍연택과 함께 공연을 열었다. 이날의 협연자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에드워드 아우어. 당시 32세이던 아우어는 196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5위에 입상하고 활발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아우어는 이날 쇼팽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꼭 50년 만인 올해 아우어가 서울에서 ‘아우어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를 연다. 서초동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열흘 동안 음악회, 경연대회, 교수와 학생들의 대화 등을 진행한다. 한국ㆍ일본ㆍ중국ㆍ미국ㆍ폴란드 등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 50여명이 함께 한다.
아우어는 명문으로 꼽히는 인디애나 음대에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매년 여름 아카데미를 미국에서 열었는데 특히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학생들의 열띤 참여와 수준 높은 실력이 인상적이었다”며 “이제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에서도 교육과 공연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열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아우어의 아내이자 재미 피아니스트인 문정화는 “50년 만에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음악인들과 함께 하는 뜻깊은 자리”라고 덧붙였다.
한국이 파워 하우스
“지금은 한국이 음악계의 ‘파워 하우스(power house)’다. 한국 젊은 음악인들의 성장에 같이 기쁘고 힘이 난다.” 이렇게 답한 아우어는 10년 전 한 대화를 기억해 냈다. “줄리아드 음대의 제롬 로웬탈 교수가 ‘머지않은 미래에 베토벤ㆍ쇼팽을 배우기 위해 서울 혹은 상하이로 학생들이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마음속으로 ‘설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를 서울에서 열게 되면서 그 예상에 완전히 동의하게 된 셈이다. “이제는 클래식, 특히 피아노 음악을 아시아가 이끌고 간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아우어는 특히 미국에서 여러 국적의 학생을 가르치면서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저력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 학생들은 엄청난 노력파다. ‘연습만이 날 구원한다’ 혹은 ‘나는 아직도 멀었다’ 같은 생각으로 쉬지 않고 연마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이러한 성실과 겸손이 최근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선전에 밑바탕이 됐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는 노력과 성실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문정화는 20여년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우어 교수가 한국 학생을 공개 레슨 했는데 아주 어려운 곡을 잘 연주했다. 그런데 ‘첫 화음이 뭐였지?’ ‘어떤 의미였지?’라는 질문을 하니 그 학생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처럼 당황했다.”
“입시나 경연대회를 목표로 달려온 학생들은 벽에 부딪힐 수 있다. 음악 언어에 대한 이해, 음악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이번 아카데미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아우어) 이들은 쇼팽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장이었던 카타르지나 포포바 지드론, 도쿄대 교수인 아오야기스스무, 베이징 중앙 음악원 교수인 미샤 나미로프스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대진 총장과 이진상 교수 등을 초청해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
문정화는 “피아니스트들은 오랫동안 혼자 연습해오며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게 되지만, 혼자 하는 작업이 꼭 효과적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교수진과 대화하며 ‘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습은 왜 해야 하는지’ ‘경연 대회에는 꼭 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영광을 위한 콩쿠르는 그만
아우어는 또 예술로 점수를 매기는 일의 모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피아니스트들의 영웅 중 한 명인 스비아토슬라프리히테르가 콩쿠르에 심사를 가면 100점과 0점으로 극단적 점수를 줬다고 한다. 이 연주자는 아티스트인가, 아닌가만을 기준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이 음악이 스포츠 게임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는 다음 달 5~12일 매일 오전과 오후에 교수들이 총 40명의 학생을 공개 레슨 한다. 또 ‘쇼팽의 삶’에 대한 대화(8일), 교수 연주회(8일), 음악에 대한 대화(10일), 쇼팽을 과제 곡으로 하는 대회(13~14)와 우승자 음악회(14일)를 계획하고 있다. 문정화는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의 참가뿐 아니라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청강을 환영한다”며 “음악에 대한 그 어떤 질문도 환영한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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