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조 빚더미' 한전·가스公…현재진행형 재무위기[위기의 부채공룡]①
원료 인상분 미반영·수익구조 다변화 못해
전기료 3분기도 동결·도시가스는 8월 소폭 인상
"가격 정상화 통해 역마진 해소해야"
국내 전기·가스 공급을 책임지는 양대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가 막대한 부채에 시름하고 있다. 전기·가스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연료비 상승분만큼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한전·가스공사 두 공기업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는 250조원으로, 32개 전체 공기업 부채(523조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22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채는 각각 202조4502억원, 47조4286억원으로 총 249조8788억원에 달한다. 9년 전인 2014년(42조8352억원)보다 483.3%(207조436억원) 급증한 것이다.
◆2021·2022년에만 빚 84조 늘어
부채는 한전과 가스공사 모두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인 2021년과 2022년 급격히 늘었다. 이 기간에 84조1690억원의 빚이 더 생겼다. 9년간 발생한 부채의 40.7%가 이때 생겼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채는 원가 영향이 가장 크다"며 "그동안 원료비 가격이 올랐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판매가격에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전기와 가스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며 손실이 누적됐고 이는 결국 부채 증가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전의 부채 증가세가 가팔랐다. 2014년 108조8833억원에서 지난해 202조4502억원으로 93조3736억원 급증했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13조3217억원, 47조77억원씩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2021~2022년 2년간 발생한 부채는 전체 부채 규모 29.8%에 달한다. 2014년 4.6%에 불과했던 부채증가율은 2021년에는 10.1%, 2022년에는 32.2%로 뛰었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당시 상황을 "수입한 콩(연료)값이 올라갈 때 그만큼 두부(전기)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값이 콩값보다 더 싸졌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두바이유는 2020년 배럴당 평균 42.29달러에서 2021년 69.41달러로 64.1%(27.12달러) 급등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원유 수요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전기요금을 단 한 차례도 인상하지 않았다. 국제유가가 평균 96.41달러로 또 38.9% 오른 2022년에서야 전기요금을 21.1% 인상했지만 2022년 말 한전의 총부채는 192조8047억원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코로나19 여파 회복을 위한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풀린 돈 탓에 2020년 0.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2.5%로 뛰자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탓에 2020년 101.3%였던 전기요금 원가회수율(판매액을 원가로 나눈 값)은 2021년 85.9%, 2022년 64.2%까지 낮아졌다. 100원짜리 전기를 64.2원에 공급했다는 의미로, 전기를 팔 때마다 35.8원의 손해가 쌓인 셈이다.
가스공사 상황도 한전과 비슷하다. 가스공사의 부채는 2013년 34조7336억원에서 저유가 시기였던 2017년 28조9990억원으로 줄었다가 2022년 52조142억원까지 치솟았다. 2021년 6조3760억원, 2022년 17조4636억원씩 부채가 더 늘어서다. 부채증가율이 2021년에 22.6%, 2022년에는 50.5%로 높아졌다. 2017년 0원이었던 도시가스용 원료비미수금도 지난해 13조7867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사실상 영업손실인 미수금은 원가 이하의 가격에 가스를 공급한 뒤 원가와 공급가의 차이를 '외상값'으로 장부에 반영하는 것이다.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직원 1년 인건비가 복리후생 비용까지 합해서 4000억원인데 현재 미수금 규모는 전 직원이 30년간 무보수로 일해도 회수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2021년 말부터 국제 가스 가격이 200% 올랐는데 민수용(주택·일반용) 가스요금은 43% 오르는 데 그쳐 이 차액이 전부 미수금으로 쌓여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1년 이자만 6조원…국민부담만 키워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채는 대부분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금융부채다. 한전의 금융부채 비중(전체 부채 중 금융부채)은 2017년 59.2%로 낮아졌다가 이후 꾸준히 올라 지난해에는 73.2%까지 높아졌다. 가스공사도 2017년 90.7%에서 지난해 94.2%까지 치솟았다.
부채는 상환기간에 따라 장기와 단기로 나뉘는데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부채, 즉 단기 금융부채 비중이 최근 급격히 커졌다. 한전은 이 비중이 2019년에는 19.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3.9%로 확대했다. 가스공사의 경우 2019년 29.5%에서 2022년 61.3%로 뛰었다. 지난해 이자로만 한전은 4조5000억원, 가스공사는 1조6800억원을 지불했다. 이자 비용은 장기적으로 가스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소비자인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전이 부채공룡이 된 데에는 원가 이하의 전기 판매 탓만은 아니다. 수익구조를 다변화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 일성으로 '생존을 위한 변화'를 강조했다. 김 사장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서 전기요금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총수익의 30% 이상을 국내 전력판매 이외의 분야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지난해 매출은 88조2051억원으로, 이 가운데 94%인 82조9548억원이 전기판매수익이다. 그동안 전기요금 변동 여부에 취약한 재무구조를 방치한 결과다.
◆재무위기는 현재 진행형
문제는 부채공룡이 된 한전과 가스공사의 위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같은 해 12월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했다. 한전 경영정상화를 위해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51.6원 올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전기요금은 1월과 5월 각각 kWh당 13.1원, 8원씩 총 21.1원 올랐다. 4분기에는 가계 물가상승 부담을 고려해 산업용 전기만 kWh당 10.6원 인상했다. 이후 현재까지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올해 3분기(7~9월)에도 냉방 전력수요 증가에 따른 국민부담 최소화를 위해 요금을 올리지 못했다.
도시가스 주택용 도매요금은 다음 달 1일부터 MJ(메가줄)당 1.41원(6.8%), 일반용은 1.30원 오른다. 통상 가스요금은 홀수달 1일 자로 조정돼 난방수요가 적은 7월1일부터 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물가 부담 최소화를 위해 인상 시점을 8월1일로 늦춘 것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가스요금이 1원 올라도 가스공사의 수익은 연 5000억원 늘어나는 수준에 불과한데 8월부터 인상되니 절반 이하의 효과밖에 없어 역마진 구조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앞으로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등이 유발할 전력수요 급증에 대비한 설비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가격 인상을 통한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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