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

최진성 2024. 7. 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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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다고',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고'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어떨까?

[최진성 기자]

나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선생님 칭찬하기'를 한다. 원래는 친구 칭찬하기였는데, 학생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반 애들은 칭찬할 게 없다고 해서 바꿨다.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웠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척 엄격하다. 친구가 작은 잘못이라도 하면 꼭 이르고, 누가 불편하게 하는 것도 전혀 참지 못한다. 물론 무조건 참는 게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모든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만 맞추고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또 아이들은 약한 친구에게 무척 냉혹하다.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발달이 느려 보이는 친구가 있으면 꼭 잘못을 지적하려 하고, 때로는 대놓고 비웃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가끔씩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모범적인 학생마저 조금 부족한 친구를 깔보는 것을 볼 때 면, '나보다 약한 사람을 조롱하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얼마 전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추구하는 '인간상'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사회에 '창의성'이나 '주도성'만큼이나 '포용성'이 중요하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포용성 부족이 아이들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사회 갈등이 매우 심한 나라다. 신문을 조금만 살펴봐도 지역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등 온갖 갈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OECD는 우리나라가 멕시코, 이스라엘에 이어 조사 국가 가운데 3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 표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뭐만 하면 무슨 충, 무슨 충 하면서 사람을 벌레로 비하하고 나와 지향이 다른 사람을 '대깨-', '-빠', '개-'라며 낙인찍고 비난한다. 취향이나 입장,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혐오하고 조롱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교육이 부족한 탓이라며 학교에 문제해결의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런 손쉬운 선택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포용성 교육을 강화하거나 포용성 강화를 위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의 학교 교육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가정,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져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문화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둘 이상의 모순된 메시지를 받는 의사소통상의 딜레마를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녀에게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인다면 자녀는 어떤 것이 진짜 메시지인지 헛갈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중구속과 유사한 상태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가르치지만 가정과 사회는 '참교육', '일침', '사이다'에 빠져있고, 학교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해 주라고 가르치지만 가정과 사회는 참으면 바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중구속은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한 메시지에 반응하면 다른 메시지는 따르지 못하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도 실패하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학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학생은 가정과 사회의 요구를 따르지 못하게 되고, 가정과 사회의 요구를 따르는 학생은 학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중구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 사회가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너무 착하면 손해 본다'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비결인 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20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학급에서 가장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너그러운 아이들이다. 너그러운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까지 너그럽게 만들어 설령 조금 실수를 해도 쉽게 용서를 받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이제 곧 전국의 많은 학교가 방학에 돌입한다. 방학은 직장 생활을 하는 부모로서 조금 버거운 시기이지만 자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의 즐거운 학교 생활을 위해, 좀 더 포용성 있는 사회를 위해 '그럴 수도 있다고',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고'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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