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오디션 본 작품을 영화로... 이 여성 감독을 주목하라
[최해린 기자]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드니 스위니 주연의 공포 영화 <이매큘레이트>가 극장 개봉했다. '무결함'이나 '완벽함'이라는 뜻을 지닌 영단어 'Immaculate'를 제목에서 삼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는 한 수녀가 홀로 '죄 없이' 임신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 영화 <이매큘레이트> 포스터 |
ⓒ 네온 |
서브텍스트의 유려한 활용
<이매큘레이트>의 플롯은 단순하다. 이탈리아로 오게 된 미국 출신의 수녀 '세실리아'가 수녀원 내에서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너무나도 쉽게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녀원 사람들에게 수상함을 느끼고 거듭 탈출을 계획하는 이야기다.
원치 않는 임신, 이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그 주동자들을 처단하는 방식의 공포 영화가 본작만의 특성은 아니다. 2022년 6월 24일에 미 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하는 데 쓰이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일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영화들은 곳곳에서 제작되어 왔다. 불과 올해 4월에 개봉한 영화 <오멘: 저주의 시작> 역시 수녀의 임신이라는 소재와 공포 장르의 결합을 유사하게 다룬 바 있다.
▲ 영화 <이매큘레이트> 스틸컷 |
ⓒ 네온 |
작중 주인공 세실리아는 아직 이탈리아어에 능통하지 않은 미국 출신의 인물이다. 따라서 세실리아는 이야기 전개 내내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탈리아어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2003년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유사한, '언어적 소외'를 통해 외로움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녀로 추앙받거나 창녀라는 소리를 듣는 세실리아의 여정을 보면, 여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정치적 논쟁 현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이매큘레이트>는 세실리아의 임신을 둘러싼 이견을 보이는 수녀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상황이나, 예수의 상처를 예로 들며 '고난은 사랑이다'라고 강조하는 수녀원장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는 종교적 억압을 강조하기도 한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오멘: 저주의 시작>이 악마나 빙의와 같은 장르적 특성을 통해 해당 요소를 부각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편 <이매큘레이트>는 초자연적 요소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칫 약해질 수 있는 호러 장르의 특성을 이따금 '툭 튀어나오는' 점프 스캐어, 그리고 단단한 심리적 묘사로 대체한다.
시드니 스위니가 직접 나섰다
<이매큘레이트>는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아도 완성도 있는 영화라고 평할 수 있지만, 본작이 제작되기까지의 과정은 이 영화의 특별함에 한 층위를 더해 준다.
주연을 맡은 시드니 스위니는 본작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는데, 9년 전 <이매큘레이트>의 원안이 되는 영화 오디션을 보았으나 제작이 불발됐다고 한다. 이후 <유포리아> 그리고 <핸드메이즈 테일> 등의 작품으로 몸값을 올린 후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끌었던 각본을 다시 찾아, 약간의 각색 끝에 <이매큘레이트>를 다시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하는 것이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할리우드에서 프로듀서란 창작 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는 존재다. 데이비드 린치 등 작가주의 감독들도 스튜디오·프로듀서와의 갈등 끝에 작품을 수정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프로듀서와 창작자 간의 괴리는 미 영화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드니 스위니를 비롯한 배우 당사자들이 프로듀싱에 직접 나서면서, 프로듀서-창작자 사이의 경계는 나날이 더 허물어지고 있다.
▲ 영화 <바비> 스틸컷 |
ⓒ 워너브라더스 |
영화배우로 일하다가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하고 <바비>의 10억 달러 흥행을 통해 박스 오피스 장악 능력까지 보여준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러한 최근의 경향성이 성공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매큘레이트>는 작품 내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포 영화이며 작품 외적으로는 떠오르는 신진 여성 프로듀서들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표이다. <이매큘레이트>의 성공을 통해 시드니 스위니의 프로듀서로서의 여정이 더욱 순탄해지기를, 그리고 스위니와 같이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여성 제작가들이 늘어나 창작가들과 상부상조하며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담대하게 펼쳐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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