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역할도 했다고? 안재홍 연기 변신, 어디까지죠

양형석 2024. 7. 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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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우문기 감독 <족구왕>

[양형석 기자]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군복무기간은 36개월이었다(육군 기준). 1962년 30개월로 줄어든 복무기간은 1968년 통칭 '김신조 사건'으로 불리는 1.21 사태 이후 다시 36개월로 회귀했고 1977년 33개월, 1984년 30개월을 거쳐 1993년 26개월까지 복무기간이 줄었다. 그 후에도 점차적으로 복무기간이 줄어 들면서 현재 육군의 복무기간은 18개월이 됐다. 36개월 동안 복무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 셈이다.

이 때문에 30개월 이상 복무했던 일부 장년층 세대들은 "요즘 청년들은 군복무 기간이 너무 짧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세상이 변하고 유행이 돌아가는 속도는 장년층 세대들이 군복무를 하던 1950~7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따라서 1년 6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예비역들도 30개월 이상 군복무했던 세대들처럼 입대 전과 비교해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대학 입학 후 1,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는 학생들은 전역 후 복학을 하면 학교에서 '오래된 선배' 취급을 받곤 한다. 입대시기를 잘 맞춰 전역 후 곧바로 복학을 하면 물리인 공백이 2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사이에 이미 '지나간 세대'가 되는 것이다.
  
 <족구왕>은 1만 관객도 쉽지 않은 독립영화 시장에서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컴퍼니에스에스(주)
 
그의 연기 스펙트럼엔 한계가 없다

지난 2014년에 개봉해 독립영화 돌풍을 주도했던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은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이 족구를 통해 잃어버린 예전 문화와 낭만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난 안재홍은 2009년 단편영화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고 2012년 독립영화<1999, 면회>에 출연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부문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다. 그렇게 독립영화 쪽에서 이름을 알리던 안재홍은 2013년 주연을 맡은 또 한 편의 독립영화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바로 안재홍이라는 범상치 않은 배우의 등장을 알렸던 영화 <족구왕>이었다.

<족구왕>에서 뛰어난 족구실력을 자랑하는 식품영양학과 복학생 홍만섭을 연기한 안재홍은 유쾌함과 진중함 사이를 오가는 열연을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는 독립영화제인 들꽃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물론 안재홍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순수한 7수생 정봉이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2015년작 <응답하라 1988>(아래 <응팔>)이었다.

<응팔> 이후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토마스 전도사 역으로 특별 출연한 안재홍은 2017년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김주만 역을 맡아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안재홍은 2018년 영화 <소공녀>에서 이솜이 연기한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 역을 맡았고 2019년에는 <멜로가 체질>에서 손범수 PD 역을 맡아 천우희와 좋은 연기 호흡을 보여주며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안재홍의 진짜 전성기는 2020년대에 활짝 열렸다. 2020년 4월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거친 반항미를 가진 장호 역을 맡아 연기변신을 시도한 안재홍은 지난해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에서 실존인물 강양현 코치와 싱크로율 100%의 외모를 재현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퇴근 후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는 게 유일한 낙인 '덕후' 주오남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마스크걸>을 통해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안재홍은 수상소감에서 주오남의 시그니처 대사인 '아이시떼루'를 재연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안재홍은 올해 1월에도 <소공녀> 전고운 감독이 연출하고 이솜과 재회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LTNS>를 통해 유쾌한 연기를 보여줬다. 안재홍은 3월 <멜로가 체질>을 연출했던 이병헌 감독의 신작 <닭강정>에 출연하며 꾸준하고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시절 '낭만' 좇는 복학생
 
 축구 국가대표도 이기는 족구의 달인 만섭은 사실 학자금 대출이자도 갚지 못한 불쌍한 복학생이다.
ⓒ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컴퍼니에스에스(주)
 
<족구왕>은 개봉 10년이 지난 지금 '독립영화의 신화'로 기억되고 있지만 제작 당시엔 1억 원의 제작비로 힘들게 완성된 작품이었다.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족구왕>은 2014년 여름 시즌이 끝날 무렵인 8월 말에 개봉했고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면서 4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일반 상업영화였다면 초라한 성적이지만 독립영화로는 충분히 대단한 흥행이었다.

<족구왕>은 전역하기 직전까지 부대에서 족구를 즐기던 홍만섭(안재홍 분)이 복학 후 더 이상 족구를 즐기지 않는 학교 현실에 맞서 교내에 족구장 건립을 건의하고 교내 족구대회에 출전해 우승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물론 단순한 스포츠 코미디 영화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족구왕>은 취업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통해 캠퍼스의 낭만과 기쁨을 잃어버린 대학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안재홍이 연기한 만섭은 영화 속에서 전역신고 직전까지 부대 동료들과 족구를 즐기고 축구 국가대표 출신과 1대1 족구대결을 벌여 승리할 정도로 엄청난 족구고수로 나온다. 하지만 정작 실제로 안재홍은 군 시절에도 족구를 거의 하지 않았을 정도로 족구를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안재홍은 <족구왕>에 캐스팅된 후 현역 족구선수인 무술감독에게 하드트레이닝을 받았고 그 결과 영화 속에서 멋진 동작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족구왕>은 2013년의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촬영은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이뤄졌다. 독립영화이다 보니 당연히 촬영환경은 열악할 수 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일부 장면은 촬영허가를 받지 못해 '도둑촬영'을 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두 번의 교내방송 목소리는 2인조 밴드 페퍼톤스의 이장원이 맡았는데 우문기 감독은 3집부터 5집까지 페퍼톤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페퍼톤스와 인연을 맺었다.

<족구왕>의 스태프 중에는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들이 적지 않다. <족구왕>의 각본을 쓴 김태곤 감독은 2013년 안재홍 주연의 독립영화 <1999, 면회>를 만들었고 지난 12일에 개봉한 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를 연출했다. 김태곤 감독과 함께 제작과 기획에 참여한 전고운 감독은 안재홍이 출연했던 <소공녀>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휩쓴 전도유망한 젊은 감독이다.

주인공 돕다가 라이벌에게 가는 히로인
 
 만섭이 짝사랑하던 히로인 안나는 대회가 끝난 후 만섭이 아닌 강민을 선택한다.
ⓒ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컴퍼니에스에스(주)
 
2018년 이후 한 동안 활동이 뜸했다가 지난해 영화 <스위치>,<패스트 라이브즈>,<뉴 노멀>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재개한 황승언은 신인 시절이던 2014년 <족구왕>에서 학교 홍보모델 서안나를 연기했다. 남자친구인 강민(정우식 분)의 질투심을 유발할 목적으로 만섭과 가까이 지낸 안나는 자연스럽게 만섭의 족구팀 일원이 됐다. 하지만 여느 스포츠 영화처럼 경기가 끝난 후 남자주인공과 연결되는 아름다운 결말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족구왕>에서 주인공 만섭의 라이벌 포지션에 있는 축구 국가대표 출신의 강민은 자신과의 1대1 족구대결에서 승리하고 여자친구 안나와도 가까워지는 만섭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결국 강민은 해병대 팀에 들어가 교내 족구대회에 출전하는데, 결승에서 만섭이 속한 식품영양학과에게 역전패를 당한다. 하지만 강민은 경기가 끝나고 자신에게 돌아온 여자친구 안나와 키스를 하면서 최종 승자(?)가 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나의 아저씨>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박호산은 <족구왕>에서 만섭과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식품영양학과 선배 형국을 연기했다. 형국은 만섭에게 '공무원 준비하라'고 강조하지만 알고 보니 만섭 이전에 식품영양학과의 족구 에이스였고 결승에서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1972년생 박호산은 개봉 당시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족구왕>에서 대학생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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