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47)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는 의심할 여지없이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새이다. 새의 황갈색 그림자와는 대조적으로 납빛 흰색을 크림색 반죽 벽의 배경으로 칠했다.
화가는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아주 작은 새를 마법처럼 완벽하게 재현했다. 반짝이는 작은 눈, 벽에 비친 그림자, 빛과 그늘로 색상과 세부는 절제되고 눈에 띄는 뚜렷한 터치로 황금 깃털을 그렸다. 다리가 묶인 작은 새가 있다. 그게 전부다.
황금방울새는 검은색 날개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고 눈과 부리 주위에 빨간색 반점이 있는 새이다. 정식 명칭은 ‘유럽금방울새’로 12cm 정도의 노래하는 새다. 새의 빨간 반점이 예수의 열정과 구원을 상징하여, 흑사병이 유행하던 르네상스 시기의 그림 500여 점에 등장한다.
대표작으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리타의 성모>와 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성모>가 있다.
황금방울새가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 먹이를 먹고 있다. 황금방울새는 작은 물통으로 그릇에 담긴 물을 퍼낼 수 있기 때문에 이천 년 전부터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었다.
내가 이 새를 검색하게 된 것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하는 영화 <더 골드핀치 The Goldfinch>를 본 다음이다. 미국의 소설가 도나 다트(Donna Tartt)는 마우리츠하위스에서 이 그림을 보고, 배경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바꾸어 소설을 썼다.
2014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줄거리는 이렇다. 미술관 폭발테러로 엄마를 잃은 시오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인 <황금방울새>를 우연히 가져오게 된다. 시오는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그림을 껴안고 자신의 잘못으로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을 하며 악몽을 꾼다.
아버지를 따라 간 라스베가스의 사막 빌라에서 역시 엄마 잃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보리스를 만난다. 보리스는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로부터 약물과 술로 도피한다. 경마에 빠져 아들의 학자금에도 손을 대려는 아버지에게서 방치된 시오는 보리스와 함께 술과 약물에 빠져든다.
어린 시오의 삶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글로 위로받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대의 삶이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마주하고 살아가라.
그 삶이 그대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으니
그대 삶을 사랑하라.
가난한 그 모습 그대로
술에 취한 시오는 <황금방울새>를 보리스에게 보여준 것도 기억 못 하고,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뉴욕으로 돌아온다. 겉으로는 완벽한 골동품 딜러 가면을 쓰고 살아가던 어느 날 <황금방울새>가 마이애미 조직의 마약 거래에 담보로 등장했다는 사실과 FBI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는 협박을 받는다.
우연히 보리스와 재회한 시오는 보리스가 자신의 <황금방울새>를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다.
시오의 후견인이며 동업자인 호바트(제프리 라이트 분)는 소실되었다고 생각한 명작 <황금방울새>가 시오의 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인류의 문화유산인 걸작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시오와 보리스는 암스테르담으로 찾아가 범죄자의 손에서 그림을 찾아 미술관으로 되돌려놓는다. 이제 꿈에 나타난 엄마는 시오를 외면하지 않고 미소를 짓는다.
도나 다트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폭발사고를 씨줄로, 보스턴 이사벨라 가드너 미술관의 도난사건을 날줄로 교차하여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더 골드핀치>에서 작가적 재능을 발휘했다.
영화에 이어 사슬에 묶인 작은 황금방울새는 감동적인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의 편지‘를 떠오르게 한다. 로자는 장애 여성으로 유대인 공산주의자였다. 극렬한 공산주의자 가운데에는 핍박받는 유대인이 많았다. 로자가 장애가 없고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공산주의자가 되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을 격렬히 반대하다 투옥되었고, 감방에서 박새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늘 내 감방 창 가까이에 머무는 푸른박새 한 마리가 다른 새들과 모이를 먹으러 와 '지지배배' 우스꽝스러운 짧은 노래를 부르는데, 꼭 어린애가 짓궂게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똑같은 소리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달 초, 그 새가 다른 새들과 함께 사라졌는데, 분명 어딘가 다른 곳에 둥지를 튼 게지요. 수 주 동안 그 새를 보지도 노랫소리를 듣지도 못했습니다. 어제 귀에 익은 그 새소리가 갑자기 우리 안뜰과 다른 감옥을 분리하는 담 저쪽에서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상당히 달랐어요. 짧게 연달아 세 번을 울었기 때문입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지지배배’ 그리고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소리가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그 허둥거리는 부름에 너무 많은 것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새의 생이 겪은 역사 전체가 말입니다.”
파브리티우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화가였다.
인물화, 정물화, 거리 풍경, 역사화를 주로 선명한 색상과 미묘한 빛 처리로 그렸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린 1654년 32살의 나이로 델프트에서 화약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황금방울새>의 작은 화폭에 남아 있는 또렷한 서명과 1654년이라는 숫자는 덜 마른 물감이 패인 자국과 함께 불운한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파브리티우스는 암스테르담 북쪽 미덤빈스터(Middenbeemster)에서 화가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두 형제도 역시 화가였다. 19세에 아내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으며, 렘브란트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는 아주 젊을 때 아내와 세 아이를 잃었다. 그래서 1650년에 새 아내와 델프트로 이주했다.
당시 델프트에는 페르메이르와 피테르 데 호흐 등 예술가들이 원근법, 빛 그리고 색상을 보여주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었다.
페르메이르와 마찬가지로 파브리티우스도 죽은 뒤 세상에서 완전히 잊혔다.
19세기 중반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스 작가인 테오필 토레에 의해 페르메이처럼 이백 년 만에 ‘재발견’되었다. 그의 초기작은 렘브란트처럼 어둡고 따뜻한 색상, 넓은 붓 터치, 극적인 빛으로 만들어낸 역사화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페르메이르처럼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팔렸다.
그림에서 깃털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검은색과 캐러멜색 깃털 사이에 두 개의 밝은 노란색 깃털이 있다. 파브리티우스는 검은색 물감 위에 노란색으로 두 획을 추가했다. 그는 뾰족한 붓대로 젖은 물감에 미묘한 스크래치를 만들어 노란색 아래 검은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스승 렘브란트에게 배운 비법이었다.
파브리티우스는 왜 새를 그렸을까?
아마도 빈 벽이나 작업실 유리창에 있는 새를 보며 사람들은 진짜 새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눈속임’의 트롱프뢰유(Trompe-l’oeil)이다. 화가에게 이보다 더 좋은 광고는 없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대략적인 윤곽임에도 불구하고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는 매우 사실적으로 보인다. 이는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을 선도한 기법이다. 이차원의 평면인 캔버스에 완벽한 환상을 창조하는 것은 화가가 열망하는 최고의 성취이다.
골드핀치와 같이 파브리티우스의 그림 중 몇 점에는 배경으로 석고가 떨어진 흰색 벽이 있다.
그는 초상화에도 이 배경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대개 근사한 배경의 초상화를 선호하기에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파브리티우스는 팔레트나이프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몇 개의 두터운 페인트 스트로크를 배치하여 벗겨지는 석고를 그렸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실제 벽인 듯 느껴진다. 이 환상을 강화하기 위해 때로는 벽에 못을 그렸다.
1654년 10월 12일 월요일 아침, 델프트에서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화약 약 9만 파운드가 폭발했다. 폭발 소리는 고막이 터질 듯했고, 도시의 1/3이 파괴되었다. 창고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분화구가 생겼다. 이 사고로 인해 거의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날 아침 카렐 파브리티우스는 창고 근처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완전히 날아갔다.
그는 폐허에서 구조되었으나 심한 부상을 입어 곧 사망했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폭발로 인해 파괴되었다. 델프트 시절의 그림 4점을 포함한 유화 12점 등 총 22점만이 남았다.
그가 재난에서 살아남았다면 얼마나 위대한 작가가 되었을까? 미인과 천재는 단명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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