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에미넴, '예전의 나'를 죽이다

이현파 2024. 7. 22. 09: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 앨범 'The Death Of Slim Shady' 발표

[이현파 기자]

 에미넴(Eminem)의 정규 12집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ace)>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힙합 음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지만, 21세기 힙합 최고의 슈퍼스타는 백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별로 없다. 에미넴이 바로 그 증거이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에미넴은 자신을 '화이트 트래쉬(미국 사회에서 외면받는 하층 백인)'로 자처하며 슈퍼스타가 되었다. 에미넴에게는 여과없는 공격성, 동시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랩 실력이 있었다. 그는 2억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고, 15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빌보드는 그를 2000년대의 아이콘으로 선정했다. 비틀즈, 엘튼 존, 마이클 잭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에미넴은 2024년 7월 12일 <The Death of Slim Shady(Coup de Grâce)>를 발표했다. 2020년 1월 발표한 11집  <Music To Be Murdered By> 이후 4년 만이다. 돌아온 에미넴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단연 뜨겁다.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200 차트, 영국 더 오피셜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스포티파이 미국 차트에서도 거의 모든 수록곡을 차트 순위권에 올렸다. 그는 단숨에 6천만건 이상의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했고 이는 에미넴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실적이다.

앨범 제목 그대로 에미넴은 '슬림 셰이디'의 죽음을 자처한다. 'Without Me'의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오마쥬한 'Houdini'의 뮤직비디오는 이 앨범의 방향성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외에도 앨범 전반에 전성기 시절의 에미넴 스스로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하다.

슬림 셰이디란 20년 넘게 에미넴을 정의했던 '제 2의 자아'다. 자신의 앨범에서 슬림 셰이디로 분했다. 에미넴은 이 컨셉을 통해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 정서 불안정, 내면의 폭력성, 불우한 가족 환경 등을 이야기했다. 이 콘셉트와 함께 에미넴은 더욱 창조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는 기존의 도덕적 규범을 비웃으며, 여러 차례 선을 넘었다. 팝스타, 성소수자, 정치인, 심지어 가족까지. 그 누구도 슬림 셰이디의 조롱 앞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한편 슬림 셰이디는 타인과 사회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에미넴은 언제까지 슬림 셰이디로 존재할수는 없었다. 약물 중독에서의 회복, 그리고 딸 헤일리를 키우면서 겪은 개인적 성장을 다룬 앨범 <Recovery>에는 보다 진중한 에미넴이 있었다. 슬림 셰이디의 자아는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냈지만, 에미넴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 자아를 끝내고자 한다. 에미넴은 이번 앨범이 '콘셉트 앨범'을 확실히 하면서 앨범을 곡 순서대로 들어달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하드코어 힙합으로 무장한 에미넴은 젊은 시절의 자신처럼 활보하고자 한다. 

50대에 접어들었지만 에미넴의 랩 기술은 여전히 현란하다. 치밀한 라임 구성은 물론, 현세대 음악팬들에게 그를 각인시킨 속사포 랩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젊은 래퍼 JID와 함께 부른 'Fuel'에서도 인상이 흐려지지 않는다. 그는 이 앨범에서 성소수자, 정치적 올바름, 캔슬 컬쳐(Cancel Culture)을 공격하고, 장애를 가사의 수단으로 삼는다.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Z세대를 조롱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의 표현은 불쾌하다. '슬림 셰이디의 죽음'을 천명한 앨범이기에 적나라한 표현은 더 의미심장하다. 한편으로는 이번 앨범에 대한 비평가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2년, 에미넴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행사에 참석했다. 헌액자의 자격으로 참석한 그는 약물 중독으로 인해 생사의 위기를 겪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음악이 나의 생명을 구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에미넴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은인인 닥터 드레를 비롯해 나스, 스눕독, KRS ONE 등 수많은 래퍼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쉬지 않고 100명이 넘는 래퍼들을 열거한 에미넴에게서는 세월이 가져다준 성숙함이 보였다. 그러나 신보가 보여주듯 그는 여전히 거장이라는 무게감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