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김민정 기자]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은 트랜스젠더 어린이의 20여 년 성장 과정을 담은 책이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뿐만 아니라 원가족과 학교, 마을의 주변인 등 공동체의 경험과 성장 과정이 함께 담겨 있는 소중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사자나 가족들의 자기 서술이 아니라 참여 관찰 내지 인터뷰 등의 방식으로 와이엇에서 니콜로 트랜지션 하는 과정이 그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담겨 있다. 또한, 그 이야기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언제 우리 사회에 등장했는지, 니콜 이전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어떤 상황들이 있었는지, 의료계는 어떤 현실이었는지, 젠더의 개념은 물론 다양한 역사를 세심히 담고 있다.
▲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 트랜스젠더 어린이가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 성장한다는 것, 에이미 엘리스 넛(지은이), 현아율(옮긴이) |
ⓒ 돌고래 |
와이엇이 태어나면서부터 지정받은 성별로서 스스로를 인지하지 않을 때, 그냥 무시하고 간과하지 않은 엄마 켈리가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아빠 웨인은 비록 처음에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 역시 변화하여 와이엇이 니콜로서 정체화하는 과정을 지지할 수 있게 되었고, 성소수자 부모로서 그 역시 벽장을 나온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절로 응원하게 되었다.
또한 와이엇의 일상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와이엇을 형제가 아닌 남매로서 대한 쌍둥이 조너스와 와이엇 시절에 학교에서 만난 리사 어하트란 상담 선생님 등 와이엇의 세상에는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특히 리사 어하트는 켈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와이엇이 학교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무엇보다 와이엇의 어린이 친구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른'들보다 성별이분법에 갇히지 않았다. 와이엇을 이상하게 취급하거나 배제하지 않았기에 와이엇은 학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누구나 안전하게 교육받고, 누구나 자신으로서 인정받아야함을 와이엇의 가족과 학교 공동체로 하여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발생하고 있기에 이 책의 소중함이 커진다.
이 책에 담긴 니콜의 경험은 트랜스젠더 어린이가 차별·배제 당하지 않고 가족과 공동체에 인정받고 어우러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왜 모두의 안전과 평화의 삶이 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실제로 존재한 이야기이기에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외과적 수술을 통한 트랜지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어린이·청소년 시기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이 어떤 불안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사실 너무 잘 알고 있는 사회에 살면서도 유독 그것이 성소수자에게는 취약한 것처럼 군다. 아니 사실 여전히 무지하다. 더 나은 공동체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죽임 당하게 두지 않고, 죽이지도 않기 위해서는 성별이분법을 당연한 정답처럼 가져선 안 된다.
이 책의 여러 사례에 끝내 떠나간 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사건이 낯설지만은 않다. 누군가 자신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혐오 받는 사회에서 사회적 타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러한 사건을 언제까지 계속되게 할 것인가.
이 책의 혐오하는 이들의 사례에서 가족과 주변, 학교에서도 모두 니콜을 받아들이고 중요한 문제, 니콜이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기독시민연맹'은 성전환을 할 수 있는 18세 이전이라면 화장실도 지정성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며 악의적 차별 행위를 펼쳐간다.
이 차별과 혐오 행위들은 니콜과 가족들을 매우 힘들게 하였으나 니콜과 니콜의 가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평등을 학교에 요구하고, 다중이용시설 제한 법안을 부결 시키는 등 계속해서 싸워나간다. 니콜의 시간은 오늘에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니콜의 삶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들을 묵과할 수 없다.
패소의 경험도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싸워나가 끝내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야함을 확인하는 승소의 경험도 가졌다. 니콜의 안전하고 평등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니콜 그리고 니콜의 가족들과 주변의 연대자들은 멈추지 않고 싸우고 변화를 만들어왔다.
홀로 벽장 속에서 외로워하고 고립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투쟁하며 성장해나가는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우리는 나다워지기 위해 생애 전반을 '트랜지션'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의 삶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화 속에 있기에 '트랜지션'은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 누구도 차별에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명확하다.
덧붙이는 글 | 퀴어페미니스트 ㅣ 독서생활자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