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상미 기자]
얼마 전, 구십을 넘긴 할아버지가 집에서 쓰러지셨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시다 잠시 어지러우셨다고 한다. 재빨리 벽을 짚었지만 한 발 늦은 모양이다. 다행히 함께 사는 구순의 할머니가 119에 신고해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겼다.
할아버지는 꼬리뼈를 다치셨는데 연세가 많아 병원에서도 딱히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간호사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드릴게 없어요. 이제 할아버지 선택입니다. 이대로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시거나 이제라도 운동하시면서 회복하셔서 일어나시거나 둘 중 하나에요."
냉정하게 들리는 간호사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자식들은 분주해졌다. 그동안은 연세는 많아도 두 분이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는 이유로 적당히 모른 척하며 지냈지만 아버지가 쓰러진 마당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식들도 자식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노부모를 모시고 살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도 출가한 자식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자식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요양보호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간호사 말에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는 마지막 의지를 발휘해 매일 아침 병실 복도를 걸었다. 기적처럼 혼자 걸을 수 있게 된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고, 요양보호사와 두 노인이 함께 한 집에 살게 되었다.
▲ 문미순 작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 이상미 |
제 19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문미순 작가의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도 간병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설은 칠십대 중반의 어머니를 돌보는 오십대 명주와 알코올성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스물여섯 청년 준성이 주인공이다.
명주는 이혼 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다 화상을 입었다. 화상치료는 끝났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발바닥 고통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백만 원 남짓한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준성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갑작스럽게 쓰러진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준성은 낮에는 아버지를 돌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물리치료사를 꿈꾼다.
넓은 세상을 누비며 많은 것을 경험할 나이지만 준성의 세상은 아버지를 돌보는 작은 임대아파트 한 평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준성은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의 운동을 챙기고 이웃들에게도 상냥하게 먼저 인사를 건네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사건은 명주가 외출한 사이 명주의 엄마가 집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면서 시작된다. 명주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대신 나무관에 엄마의 시신을 넣어 작은방에 두기로 결심한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주 엄마 앞으로 연금이 입금되고 명주는 연금을 몰래 수령해 생활한다. 곧 엄마를 따라 죽을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사정을 모르는 주변에서는 명주 엄마의 안부를 묻고 명주는 몰랐던 살아 생전의 엄마 모습을 알게 된다.
한편 준성의 아버지는 아들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몰래 소주를 사다 마시는 탓에 날로 병세가 악화된다. 그러던 중 사고로 화상까지 입게 되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상태는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준성은 물리치료사 시험에도 낙방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에 지친 준성도 순간마다 차오르는 분노를 견디기 힘들다.
▲ 문미순 작가 |
ⓒ 이상미 |
멀리 볼 것도 없이 주변에서도 오랜 돌봄으로 인해 지쳐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돌봄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여운은 더욱 오래 남는다.
백세시대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장수가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는 관심과 연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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