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엔저]①국제투기꾼까지 가세했나…구조적 배경은

이창환 2024. 7. 22. 06: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 서학개미 증가에 엔저 약세
헤지펀드 엔저에 베팅 늘어난 것도 영향
슈퍼엔저에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역시 증가
엔화 가치가 역대급으로 하락하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는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찾은 여행객들이 짐을 부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4월까지 일본에 수입된 미국산 소고기는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 엔화가 급격한 약세를 보이고 현지 생산량마저 줄면서 일본의 상인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구매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1년 사이에 일본에서 유통되는 유럽산 돼지고기 도매가는 40%가 치솟았다. 노르웨이산 연어 가격은 3년 만에 40%가 치솟아 많은 상인이 품질이 낮은 대체품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엔화 약세로 일본 내 수입품 가격이 전방위적으로 치솟고 이는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일본인 해외 투자 늘면서 엔화가치 하락

일본의 엔화 가치가 역사적 수준으로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달러화의 강세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구조적 배경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력한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인들의 해외 투자 증가다.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을 매수할 때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데 이 때문에 엔화가 구조적인 약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개인과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해외 증권에 투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엔화 가치 하락을 가속화했다. 한국 역시 서학개미가 늘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졌는데 비슷한 현상이 일본에서도 발생 중이다.

특히 올해부터 혜택이 확대된 신(新) 소액투자비과세제도(신NISA)로 해외 투자가 크게 늘었다. NISA는 주식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비슷한 제도인데 비과세 혜택은 더 크다.

올해 1월부터 NISA의 연간 비과세 투자 상한액은 120만엔(1050만원)에서 360만엔(3140만원)으로, 누적 한도는 600만엔(5230만원)에서 1800만엔(1억5700만원)으로 세 배 상승했다. 비과세 기간도 무기한으로 늘었다.

덕분에 올해 1분기 신NISA 계좌개설 수는 전년 대비 3.2배 증가했고 투자금은 2.8배 늘었다. 일본 투신운용 업체의 올해 상반기 해외 주식과 펀드 순매수액은 역대 최고인 6조1639억엔(약 53조원)을 기록했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일본 주식시장 투자정보부 책임연구원은 “현재 일본에서 신규로 투자하는 사람들의 70%는 해외에 투자하는 것 같다”며 “신NISA의 혜택이 증가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해외 투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 엔화 공격 역시 엔화 약세 요인

엔화 약세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세력의 엔화 공격이 꼽힌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뒤로 밀리면서 엔화약세에 베팅하는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늘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엔화의 약세에 베팅하는 중이다. 헤지펀드들은 일본은행(BOJ)이 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2분기 들어 엔·달러 환율 상승에 베팅하는 콜옵션 계약을 확대했다. 올해 들어 엔화 하락에 베팅하는 콜옵션 계약 숫자는 작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로 인해 지난 2분기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넘겼고 BOJ가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기 위해 달러를 파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지만 엔·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 진열된 엔화.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김 책임연구원은 “실제로 BOJ가 엔저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며 “시장 개입을 해도 효과가 길게 가지 못하고 있다”며 헤지펀드의 엔화 공격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꾼 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크게 늘어난 것도 엔화 가치 하락 요인이다. BOJ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은행 일본지점이 본점으로 송금한 자금은 15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역대급 엔저로 엔화를 빌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자금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라카마 다이스케 일본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 차이에 따른 엔 매도, 달러 매수를 뜻하는데 엔저현상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엔 캐리와 함께 미·일 금리차와 대규모 무역적자 등이 엔저에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