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나와는 잘 지내" 김정은에 손짓…'독재자 조련사' 과시

이유정 2024. 7.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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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최종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김정은 같은 독재자도 마음대로 다룰 줄 아는 미국 대통령, 동맹이 미국을 등쳐먹도록 두지 않는 대통령, 어떤 도움이나 연대 없이도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대통령.'

지난 18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드러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외 정책 측면에서 지향하는 지도자상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날 93분 간 진행된 수락 연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은 1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콕 짚어 “나는 김정은과 아주 잘 지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자신이 '독재자들을 다룰 수 있는 강한 지도자'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모라토리엄 어게인? 보상 줄지는 미지수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나는 북한 김정은과 아주 잘 지냈다. 그도 나를 다시 보고 싶어할 것이고, 나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알다시피 핵무기나 다른 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20일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 유세에서도 "김정은에게 미국에 와서 야구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는 일화까지 풀어놨다. 그는 “김정은은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나는 그와 잘 지냈다"며 "그는 핵무기를 사고 만드는 것만 원하는데, 나는 그에게 ‘긴장 풀고 좀 느긋하게 있어라.’ ‘(뉴욕)양키스의 야구 경기나 보러 가자’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연일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한 건 “내가 대통령이었을 때 더 안전했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자신은 김정은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등 권위주의 국가 정상도 제압할 수 있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수락연설에서 "러시아는 그(트럼프)를 두려워했고 중국도 그를 두려워했다"는 헝가리 총리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또 재임 중 “우리는 북한으로부터의 미사일 발사를 멈췄는데, 북한은 지금 다시 말을 안 듣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을 성과로 언급하기도 했다. 재선시 김정은과의 친분을 토대로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재개 등 ‘탑다운’식 접근법을 끌고 가거나 핵·미사일 개발의 동결에서 그치는 ‘스몰 딜’ 우려를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는 "수락 연설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트럼프 2기 대외 정책의 핵심 원칙은 대통령 중심의 탑다운 방식의 회귀"라면서 "다만 트럼프는 이미 2019년에 김정은을 다뤄봤고, 이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없는 성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1기 때도 미국이 북한이 원하는 선물을 준 적은 없었다. 사실 어렵게 결심한 모라토리엄의 대가로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는 게 북한이 갖는 불만의 골자였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당시의 북·미 협상을 ‘남는 장사’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트럼프가 표면상 김정은과 우호적인 관계만 유지한 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문제처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한 뒤 한반도 문제는 뒤로 미뤄두는 식의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위험한 신호’ 받을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을 당시의 모습. AFP=연합뉴스
연이어 김정은을 거론하는 트럼프의 의도를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도 주목된다. 김정은이 자신에게 손짓한 트럼프에 ‘베팅’하려 11월 미 대선 직전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안보 무능을 부각하고, 대선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올 초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 대선 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략환경 조성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9월을 핵실험 시기로 예상하기도 했다.

만약 북한이 추가로 ICBM 도발에 나선다면 고체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화성-18형을 개량해 고각 발사할 수 있다. 아직 미진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 획득을 위해 탄두부의 삭마 현상 점검이 가능한 중거리 미사일 대체 실험 등도 벌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김정은 역시 트럼프를 한 번 상대해본 만큼 큰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비핵화 입장을 견지한 ‘하노이 노 딜(2019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사태를 학습한 김정은이 쉽사리 트럼프와의 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일단 러시아라는 ‘뒷배’를 챙긴 김정은이 향후 미·러 관계의 향방이나 트럼프 2기의 구체적 대외정책 방향을 가늠한 뒤 행동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김정은으로서는 안전 보장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트럼프 재집권 초반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이벤트 외에 실질적으로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동맹 압박 통한 中 팔 비틀기 재연될 듯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18일 연설에서 "소위 동맹국들이란 나라들이 수 년간 우리를 이용했다"고도 밝혔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들어와서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 나라를 약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미군의 한국 주둔을 두고서도 한국이 미국을 ‘돼지저금통(piggy bank)’처럼 이용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1기 때의 동맹 경시 안보관이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미는 이런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11월 대선 전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합의가 이뤄져도 트럼프 재선시 이를 뒤집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한미군 역시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중국을 겨냥해 “중국이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팔기 위해 대규모 공장들이 멕시코 국경 너머에 건설되고 있으며, 이들에겐 세금도 아무것도 부과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게 할 것이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동차에 약 100~200%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에서 판매될 수 없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대중 압박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점을 재확인한 것인데,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미국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양상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소다자 동맹을 활용한 ‘격자형 구조’로 중국을 포위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동맹과의 연대 없이 1대1 압박으로 관세 등을 무기로 활용해 중국의 팔을 비틀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연설에서도 “(재임시)우리는 중국을 놀라운 정도로 이겼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에 또다른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도 미 측은 전세계적으로 중국 IT기업 화웨이 퇴출 압박을 벌이면서 화웨이와 거래하는 각국 기업들을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한국 통신사의 실명을 공개 언급하면서 “믿을 수 있는 곳으로 공급업체를 바꿀 것을 촉구한다”고 대놓고 거론하기도 했다.

일본에선 벌써부터 '트럼프 2기'를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일본 교도통신은 20일 미 철강회사 US스틸 인수를 추진 중인 일본제철이 트럼프 정부의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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