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도면에만 있던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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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사망자 23명을 낸 경기도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를 보면서 내내 풀리지 않던 의문이 있었다.
배터리 공장 3동에서 이번 화재가 발생하기 바로 이틀 전 옆건물인 2동에서 불이 났었다.
당시 화재 경보에 놀라 뛰어나온 3동 작업자들은 "2동에 불이 났는데 왜 3동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냐"는 공장 직원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작업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공장에 대피로를 확보하고 화재 발생 시 작업자들이 곧바로 탈출할 수 있도록 안전 지침을 강화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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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사망자 23명을 낸 경기도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를 보면서 내내 풀리지 않던 의문이 있었다. 23명은 왜 모두 작업장에 갇힌 듯 대피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생명을 잃었을까. 화재를 가장 먼저 목격한 작업자들이 서둘러 탈출하지 못한 게 의문이었다. 공장 평면도를 보면 화재가 발생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2개나 있었는데도 말이다.
계단을 이용하려면 먼저 작업장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나와야 한다. 복도 한쪽 끝에 계단이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번진 화염과 연기를 뚫고 출입문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출입문은 리튬배터리 제품을 쌓아 놓은 데 있었고, 이 리튬배터리에서 처음 불이 났다. CCTV 영상을 보면 작업장이 시커먼 연기로 뒤덮이기까지는 4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폭발이 수차례 발생하던 발화 지점 근처의 출입문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출입문은 애초에 쓸 수 없었다. 적재된 배터리 제품들로 출입문이 막혀 있었다. 물품을 운반하는 용도로 쓰는 리프트와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이곳에 제품을 쌓아둔 것으로 보인다.
막힌 출입문 오른편으로 출입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문제는 폭발이 계속되던 발화 지점 가까이 지나가야 출입문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 생존자는 “불꽃을 보고 뛰어나가려 했는데 다시 펑 소리가 났고 (출입문과 복도 쪽 계단은) 연기로 막혔다. 방법이 없어서 사무실로 들어가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직후 가까스로 복도로 빠져나온 몇몇이 작업장 건너편 사무실 창밖으로 몸을 던져 생명을 지켰다는 증언이었다.
삽시간에 퍼진 불길과 유독가스 때문에 복도로 탈출한 작업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 본능적으로 불길 반대편 작업장 안쪽으로 뛰어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거기선 창밖으로 몸을 던지기도 어려웠다. 이곳에서 6개월 넘게 일했다는 여성은 “뛰어내릴 수 없는 되게 작은 창문만 있다”고 했다.
결국 발화 지점에서 대각선 끝에 있는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그나마 안전한 대피 루트로 보인다. 그러나 작업자들은 이 계단이 있는지도 몰랐다. 계단은 작업장 오른편에 있는 또 다른 사무실로 들어가야 이용할 수 있었다. 작업자들은 이곳을 ‘연구팀 사무실’로 알고 있었다. 사무실은 지문이나 카드로 신원 확인을 거쳐야 문이 열린다. 분리된 이 공간으로는 맘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건물 도면에는 분명 표시돼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계단이 사망자 규모를 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배터리 공장 3동에서 이번 화재가 발생하기 바로 이틀 전 옆건물인 2동에서 불이 났었다. 당시 화재 경보에 놀라 뛰어나온 3동 작업자들은 “2동에 불이 났는데 왜 3동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냐”는 공장 직원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작업 재개를 종용하는 대신 경각심을 갖고 안전 매뉴얼을 점검했다면 23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인명이나 재산 피해 없이 불이 잡혔으니 대수롭지 않다면서 넘길 일이 아니었다. 작업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공장에 대피로를 확보하고 화재 발생 시 작업자들이 곧바로 탈출할 수 있도록 안전 지침을 강화했어야 했다.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23명 대부분은 용역업체 소개로 시급 9860원을 받던 노동자들이었다. 국적은 라오스인 1명,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으로 확인됐다. 이들 사망자 명단은 공장의 국적별 사망 사고 위험률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의 공장에서 일용직 최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는 것은 여전히 허망한 죽음을 담보로 한 삶이나 다름없었다.
김경택 사회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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