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 주식이 싸지 않은 이유

2024. 7. 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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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세계적 알짜기업 '두산밥캣'과
적자 못 면한 '두산로보틱스'
난데없는 주식교환 합병에
밥캣 투자한 외국인들 "황당"

두산, 합병 이득이야 얻겠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는 잃게 될 듯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까지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며칠 전 어느 한국계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급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세계적인 건설기계 회사인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의 주식교환 뉴스가 나온 직후였다. 그 투자자는 두산밥캣이 일본의 구보타(도교거래소 상장)나 미국의 캐터필러(뉴욕거래소 상장) 같은 경쟁 기업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해 수백억원 상당의 두산밥캣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통상 어느 기업이 저평가돼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기업가치를 영업이익으로 나누는 기업가치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V/EBITDA) 배수를 따진다. EV/EBITDA 배수가 작다면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기업가치가 작게 평가된 셈이므로 그 기업이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 그 투자자의 설명에 의하면 구보타의 경우 EV/EBITDA 배수가 6배 정도이고, 캐터필러는 10.5배인 반면 두산밥캣은 2.7배에 불과해 어마어마하게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산밥캣은 지난해 10조3292억원의 매출에 1조471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시가총액은 5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 투자자는 5만원 정도에 시장가가 형성돼 있던 두산밥캣의 적정 주가를 약 16만4000원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산로보틱스와의 주식교환이 이뤄지면 이 투자자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은 하루아침에 두산로보틱스라는 적자기업 주식으로 교환된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530억원에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적자기업이어서 EBITDA 배수를 산출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두산로보틱스는 2023년 10월 신규 상장한 회사인데 공모가 2만6000원으로 상장한 주식이 상장 첫날 98% 급등해 5만1400원에 거래를 마쳤고, 이후로도 로봇 테마주들의 급등에 힘입어 12만4500원까지 오른 바 있다. 주식교환 계획이 발표되기 전날인 지난 10일 종가는 8만원으로 내려왔지만 이 가격으로 환산해도 두산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은 5조1000억원을 넘어 두산밥캣보다 오히려 더 크다. 우리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간 주식교환 비율은 시장가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주식교환 비율은 1대 0.63으로 정해졌다.

그 투자자는 분통을 터뜨리면서 어떻게 두산밥캣이라는 알짜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을 하루아침에 로봇테마주에 투자한 것으로, 그것도 터무니없는 주식교환 비율로 바꿀 수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이 투자자에게 주식교환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있어야 하는데 비록 두산 측 지분이 46%로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저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줬다. 그런데 그 투자자가 한 말은 그야말로 ‘뼈 때리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저지한들 이미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에 기업가치는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몇 번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뚜렷한 대주주가 있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저평가된 회사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회사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자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고 하면서 씁쓸한 대화를 마쳤다. 며칠 후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그 투자자는 이미 보유 지분을 거의 다 처분했다고 한다.

두산밥캣은 외국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종목이었다. 주식교환이 발표되기 직전 외국인 보유율이 42.05%로 대주주 지분인 46.07%를 감안하면 외국인들이 거의 대부분의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두산로보틱스와의 주식교환이 발표된 직후부터 외국인들은 대거 매도하기 시작했고, 약 일주일 만인 지난 19일엔 38.2%까지 하락했다.

이번 계획이 성사되면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지분율이 14%(㈜두산의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한 지분율 30%에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밥캣 지분율을 곱한 비율)에서 42%까지 상승하게 된다. 결국 두산그룹의 거의 유일한 알짜기업인 두산밥캣에 대한 두산그룹의 지배력은 크게 증가하는 것이다. 이번 두산그룹의 승부수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주주총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한 번 믿어볼까 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등을 돌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 주식은 싸 보인다. 하지만 두산 케이스를 보면 그리 싼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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