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핵무장한 한국은 안전할까

2024. 7. 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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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안보 환경의 악화 속에 대한민국 외교가 시계 제로 상황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에 매진하면서 최근엔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으며 밀착하고 있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성공한다 해도 핵 개발 감행에 따른 온갖 경제적·외교적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미국 지원 없이는 러시아의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안보 상황이 시계 제로에 가깝고 불확실성이 크지만 핵 보유나 재처리 능력 확보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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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윤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


대외 안보 환경의 악화 속에 대한민국 외교가 시계 제로 상황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에 매진하면서 최근엔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으며 밀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파국은 피하려 하지만 서로를 최대의 적대세력으로 인식하며 경쟁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 대선도 큰 변수다. 예단은 금물이지만, 암살 시도를 가까스로 모면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가 더 오른 듯하다. 트럼프 시즌2는 상당한 대외정책 변화를 예고한다.

세계 정세의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면서 우리 정치권에선 핵무장론이 재등장했다. 핵무장론은 지난해 4월 한·미 간의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 신설로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약속이 강화되며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귀환 시 바이든 행정부와의 약속이 뒤집힐지 모른다는 우려는 핵무장 논의를 다시 촉발하고 있다. 혹자는 핵무장을 주장하고, 다른 이는 재처리 능력 확보를 통한 핵무장 직전 단계까지의 준비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연 핵무기를 가지면 한국은 안전해질까.

영국과 프랑스는 핵보유국으로서 각각 215기와 290기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 회원국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이 크게 고조돼 있고, 트럼프 재집권 시 나토에 대한 미국의 동맹 방기 가능성도 높아진 가운데 나토는 물론 영국과 프랑스 모두 상당한 안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의 압도적인 핵능력 앞에서 수백기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고 해서 안전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핵무기 보유가 꼭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논리는 1970년대 한·미 간 논의에도 나타난다. 잘 알려져 있듯 박정희정부는 70년대 초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해 미국과 마찰을 빚었다. 1975년 8월 27일 제임스 슐레진저 미국 국방장관이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는 한국의 핵무기 개발이 한·미 관계를 크게 해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억제력 제공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해도 소련의 핵 능력을 당해낼 수 없으며, 핵 개발은 오히려 소련이 한국을 핵무기로 위협할 수 있도록 정당화해 줄 뿐이라고 말했다.

슐레진저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최근 북·러가 맺은 조약에는 ‘전쟁 상태에 처하면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한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성공한다 해도 핵 개발 감행에 따른 온갖 경제적·외교적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미국 지원 없이는 러시아의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핵무장론자는 핵 개발과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을 병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핵 확산에 대한 미국 조야의 근본적 거부감을 과소평가해선 곤란하다.

70년대에 미국은 한국의 재처리 능력 확보도 저지했다. 피폭 경험으로 핵무기에 대한 터부가 강한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의 재처리 능력 확보는 곧 핵무기 개발 의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혀서 동아시아에서 핵 확산 도미노를 초래할 것으로 봤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자는 작금의 주장도 미국에서 설득력을 얻긴 어려워 보인다.

최근 안보 상황이 시계 제로에 가깝고 불확실성이 크지만 핵 보유나 재처리 능력 확보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답은 아니다. 불필요한 논란에 힘을 소모하는 대신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이 유지 및 강화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데 머리를 모으는 것이 최선까지는 몰라도 차선책은 될 것이다.

마상윤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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