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탁 치니 억’과 닮은 거짓말의 향연
살면서 진실만 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꼭 악의적인 거짓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탈무드』에는 거짓말을 해도 되는 두 가지 경우가 나온다. 고민 끝에 물건을 산 사람이 어떻냐고 물을 때와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예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그 밖에도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산다. 위기를 피하기 위해, 겸손이나 상대를 배려해서, 본인은 진실로 믿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니어서…. 가끔은 냉정한 팩폭보다 애교 있는 거짓말이 나을 때도 있다. 세상이 다 인정하는 거짓말도 있다. 시집 가기 싫다는 노처녀, 밑지고 판다는 상인, 오래 살아 뭐 하냐는 노인은 대한민국 3대 거짓말로 통했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추임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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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상병·명품백 사건 해명 과정서
누가 보더라도 어설픈 변명 난무
위기 모면용 거짓말 분노만 키워
」
거짓말은 대부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위기를 모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그 위기가 심각할 경우 여간 정교한 거짓말이 아니고선 벗어나기 어렵다. 금세 허점이 보이고, 이를 막으려 다른 거짓말로 덧대야 하고, 그러다 터지고 만다. 때론 너무 뻔한 사실을 부인하려다 오히려 분노를 산다. ‘박종철 고문 사망’ 사건에 대한 첫 브리핑에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내놓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이 대표적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에 언론의 추궁이 거세지자 내무부 장관 정호용은 “사람이 사람을 때릴 수 있겠나”는 말로 염장을 질렀다. 공안 당국은 이전에도 수많은 고문 사망자를 냈지만 모두 해명도 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선 처음 불려온 의사, 담당 검사 등이 사건을 덮는 데 협조하지 않자 해명을 내놔야 했다. 낯선 위기 상황에서 내놓은 어설픈 거짓말은 금방 들통났고, 정권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처리 과정에서는 ‘탁-억’류의 거짓말이 잔치를 이루고 있다. 대통령실은 수사 외압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붙던 시점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차관급 보직인 호주대사에 임명하며 “방위산업 협력에 꼭 필요해서”라고 둘러댔다. “VIP에게 얘기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사표를 내지 못하게 했다”고 떠벌린 이종호 전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VIP는 해병대 사령관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사단장은 청문회에서 공수처에 압수된 핸드폰 비밀번호를 묻자 “알려줄 의향은 있는데 비밀번호를 잊었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놀리는 수준이다.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백 논란도 마찬가지다. 김 여사 측은 “명품백을 돌려주라고 (김 여사가) 곧바로 지시했지만, 담당 직원이 깜빡했다”고 주장했다. 뇌물성 명품을 반환하라는 지시를 깜빡할 실무자가 어딨을까. 설령 그랬다고 해도 이미 지난해 난리가 났는데 그걸 왜 이제야 밝혔을까. 그런 실수를 한 직원을 아직 끌어안고 있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 기록물이라 반환 의무 없어 더 이상 조사할 필요도 없다고 한 권익위 입장은 뭐가 될까. 8개월 만에 내놓은 해명인데 순식간에 더 심각한 의혹만 양산했다.
‘거짓말에 관하여’란 짧은 단편에서 자신을 ‘전세계거짓말쟁이협회 서기장’이라고 주장한 소설가 성석제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초보적인 거짓말쟁이도 될 수 없다”고 썼다. 그런 사람들의 거짓말은 금방 탄로 나 효과가 없다. 더 커진 의혹을 덮으려고 다른 거짓말을 하다 스스로 수렁에 빠지고 만다. 수습하는 과정에서 애먼 사람 힘들게 하고 자신의 명을 재촉한다. 괜스레 책상을 ‘탁’ 쳤던 5공화국 정권이 그랬다. 요즘 풍부한 어록을 생산하는 정치인들도 신뢰라는 자산을 갉아먹고 있다.
지난 주말 김 여사가 결국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검찰청이 아닌 ‘정부 보안청사’라는 곳에서 이뤄졌다. ‘출두 불가’를 고집해 온 김 여사 측과 줄다리기 끝에 대면조사라는 형식만 간신히 지킨 출장 조사다. 어렵게 타협해 만든 자리에서 지금까지 제기된 혐의와 의혹에 대해 어떤 해명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제발 ‘탁 치니 억 했다’는 수준은 넘었으면 좋겠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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