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선] 시트콤이 되어버린 금리 정책
이쯤 되면 시트콤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갈지자 행보에 시장과의 엇박자, 자기모순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금리 정책이 코미디가 되면서다. 고금리로 인한 내수 부진 장기화 우려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이어 여당인 국민의힘까지 연일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주문하고 있다. ‘통화 정책의 독립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 상황은 정반대다.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올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대출을 억제하라고 압박하면서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며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은행 다잡기에 나선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국내 17개 은행 부행장을 불러 모아 “(부동산 등) 과열 분위기에 편승해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 15일부터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점검에 나섰다. 당국의 엄포에 이달 초 은행들은 부랴부랴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상황이 더 꼬인 건 미국 금리 인하 가시화에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서다. 주담대 고정금리 산정 기준인 은행채 금리가 하락하며 주담대 금리가 다시 내려갔다. 주담대 변동금리 기준인 코픽스 금리도 연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준으로 삼는 금리가 떨어지며 기존 대출금리 인상의 효과가 무색해지자, 은행은 당국의 눈치를 살피며 가산금리 등을 조정해 지난 15일부터 다시 주담대 금리를 올리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주문과 시장 금리 하락 속 주담대 금리만 오르는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출 소비자가 황당할 지경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대출 억제를 압박하는 건 최근의 가계 부채 증가세가 거센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상반기에 20조5000억원 늘었다. 특히 4~6월에만 17조원 급증했다. 상반기 25조5000억원 늘어난 주담대가 급증세를 이끌고 있다.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2~3% 수준에서 관리하는 사실상의 대출 총량제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상반기에만 이미 은행권의 연간 목표치를 훌쩍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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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당 등의 기준금리 인하 주문 속
가계 빚 늘자 대출금리 인상 압력
‘관치 금리’에 대출 소비자만 피해
」
대출 수요가 늘어난 건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면서다. 은행권 주담대 금리가 2%대로 낮아지고, 금리 인하 기대감이 가세하며 부동산 투자 심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 정책도 가계 대출 급증을 부추겼다. 정책대출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이 늘며 가계 대출 증가 압력을 키웠다. 지난 4~5월 가계 대출 증가액 중 정책대출 비중이 70%에 육박할 정도다. 금융당국의 주도로 올해 초 은행들이 내놓은 대환대출 서비스로 금리 인하 경쟁이 벌어지며 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연기(7월→9월)는 ‘대출 막차 타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스트레스 DSR은 향후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해 변동금리 대출자에게 가산(스트레스)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출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대출 한도가 현재보다 줄어든다.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받는 게 낫다는 계산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 부담 완화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착륙 등을 위해 이뤄진 금융당국의 규제 시기 지연이 오히려 ‘대출 절판 마케팅’이 된 셈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금리 정책에 대출 소비자의 부담만 커지게 됐다. 시장 금리가 떨어지는 데도 더 비싼 이자를 내야 해서다. 만약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 규제 잣대를 더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은행은 ‘고객 밀어내기’를 위해 3년 전처럼 금리 인상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은행의 대출 문턱이 점점 높아지면 선착순 눈치 게임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의도치 않은 정부발 대출금리 인상 덕에 은행 수익성은 나아질 듯하지만, 이자 장사 비판에 다시 불이 붙을까 은행의 속내도 편치만은 않다. 이에 더해 은행 실적이 ‘관치 금리’에 좌우돼서야 정부가 목놓아 외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밸류업은 언감생심이다.
대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시트콤과 같은 상황은 익숙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락가락 정부, 눈치보는 은행, 전전긍긍 대출 소비자가 뒤엉킨 가운데 정책 실기 논란, 높아지는 은행 문턱, 이자 장사 비판까지 닮은꼴이다. 숱한 시행착오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도돌이표처럼 일련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건, 정부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금리를 좌지우지하고 대출을 부동산 정책의 수단으로 삼은 데 있다. 관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관치 금리의 역습과 소비자 피해는 때 되면 반복되는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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