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바이오플라스틱이 알려주는 자연과의 공존
1870년 7월 12일, 미국 특허청은 발명가 존 하얏트가 제출한 ‘니트로셀룰로오스와 장뇌를 섞어서 뿔과 유사한 물질(horn-like material)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특허를 승인했다. 셀룰로이드(celluloid)라 이름 붙여진 최초의 플라스틱이 공인된 순간이었다. 이후 ‘가소성이 있는 고분자 화학물질’인 플라스틱의 개발 및 생산은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인류는 이제 해마다 약 4억t의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며 일명 ‘플라스틱 시대’(Plastic Age)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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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0년 셀룰로이드 특허 공인
인류, 연간 4억t 플라스틱 생산
생분해 안 되고 쌓여가 환경오염
친환경 대체플라스틱 생산 급증
」
자연 분해자들의 외면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순환된다. 이때 물질 순환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주로 미생물로 이루어진 분해자들이다. 분해자인 미생물들은 먼저 분해 대상에 달라붙어 구조를 느슨하게 만들고(생물열화, biodeterioration), 효소를 분비해 이들을 잘게 잘라(생물절단, biofragmentation) 흡수한 뒤, 에너지원이나 체내 구성 성분으로 사용하고서는, 최종 분해산물로 바꿔 배출해 물질의 순환을 담당한다. 플라스틱의 경우, 분자량이 매우 큰 고분자화합물인데다가 비교적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물질이기에, 분해자 미생물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효소로는 이들을 절단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마치 커다란 수박을 자르거나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킬 수는 없는 것처럼, 분해자 미생물들이 절단할 수 없는 물질은 물질 순환 시스템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는 플라스틱 제품은 만들어지는 동시에 여분의 쓰레기가 되어 그저 환경에 쌓여갈 뿐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미 현대인들은 플라스틱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플라스틱 의존도가 높아졌기에 이를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친환경 소재인 ‘바이오플라스틱’이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크게 생분해성(biogradable) 플라스틱과 바이오베이스(bio-based) 플라스틱으로 구분되는데, 각각의 경우 ‘바이오’란 단어가 주목하는 지점은 차이가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생물학적 분해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옥수수나 감자, 쌀 등에서 추출한 열가소성 전분을 이용해 만든 플라스틱뿐 아니라, 조류나 미생물이 합성한 고분자 물질, 심지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이라고 하더라도 미생물이 분해할 수만 있으면 모두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기원이 어떻든 생물학적 분해자가 분해할 수 있다면 생태계의 물질 순환 시스템에 합류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소재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생물학적 분해자 혹은 생물학적 원료
반면,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이란 분해자의 여부에 상관없이 생물학적 원료(biomass)에서 얻은 고분자물질이 일부 포함된 플라스틱을 의미한다. 이는 석유 기반 플라스틱과 생물 유래 플라스틱이 혼합된 형태이므로, 당연히 기존 플라스틱처럼 난분해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이 친환경 소재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생물 유래 물질을 일부 사용함으로 인해 플라스틱 생산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물학적 원료가 50% 포함된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의 경우, 석유 기반 플라스틱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80%나 줄어드니,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의 생산 및 바이오매스의 함유량을 높이는 방안은 충분히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기준, 바이오플라스틱의 연간 생산량은 241만t으로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의 0.6%에 불과하다. 다만, 전체 플라스틱 시장의 성장률이 연간 3% 남짓인데 반해, 바이오플라스틱의 성장세는 연간 20%를 훨씬 웃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기에 바이오플라스틱의 성장세는 당분간 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천연물에서 플라스틱 얻기
다시 19세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하얏트가 셀룰로이드의 특허를 낸 이유의 이면에는 코끼리의 상아가 있었다.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 인류가 만들어내는 모든 도구의 재료는 모두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코끼리의 어금니인 상아는 매끄럽고 단단해서 당구공이나 피아노 건반을 만드는 재료로 인기였는데, 수요가 늘어나자 상아만으로는 그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는 상아뿐 아니라, 모든 천연 재료가 가진 문제였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요 역시 늘어나는데,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는 천연 재료만으로는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늘어난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고, 그렇게 찾아낸 것이 석유를 기반으로 인공적으로 합성해낸 플라스틱이었다. 인류에게 도구를 만드는 재료가 천연물 그 자체에서 인공합성물로 옮겨간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플라스틱을 만드는 재료를 석유가 아니라 천연물에서 얻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자연에 순응하는 것에서 시작해 자연을 정복하고 수탈하는 과오를 거쳐, 자연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도구를 만드는 소재를 구하는 방식도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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