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육각형에 대하여

허정원 2024. 7. 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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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원 사회부 기자

가끔 주말에 침대에 등이 붙어버릴 때면 SNS에서 봤던 게시물을 보고 또 보는 일종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요즘 자주 보이는 건 ‘육각형 배우자’에 관한 글이다. 육각형이란 대상의 능력이나 성능 등을 6가지로 세분화해 나타낸 것인데, 주로 축구 선수의 능력치를 시각화하는 데 사용되다가 몇년사이 결혼에 적합한 상대를 가늠하는 데까지 진화했다.

육각형 배우자의 조건은 보통 키·외모·집안·자산·직업·학력 등이다. 후천적 노력에 선천적 조건까지 더해졌으니 조상신의 은덕도 몇 스푼 있어야 한다. 간절하다. 남성의 경우 키 175㎝ 이상이면서 너무 마르거나 뚱뚱하지 않을 것, 잘생기지 않더라도 호감형 외모, 부모님 노후 대비 되어 있음(본가 서울), 자산 2억~3억원, 직업은 대기업·공기업·공무원, 학벌은 인서울 4년제라고 한다. 가끔 성격, 종교, 흡연 여부 등을 더해 n각형 모델이 사용되기도 한다.

육각형 인간은 지난해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제시한 2024년의 키워드로 꼽히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이동하는 모습. [뉴스1]

육각형에 관한 글들은 대개 ‘이 정도 조건을 갖춘 사람은 흔하다’ ‘그렇지 않다’는 논쟁에서 출발해 ‘저는 몇 번 조건에서 걸러지네요’라는 자괴감을 거쳐 ‘그들이 현생에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후회 섞인 결말 순으로 전개되곤 한다. 이정도면 평범한 줄 알았다는 거다. 몇몇은 이승에선 도저히 육각형 인간을 목격할 수 없었던지 공식 통계를 찾아 그들이 실존할 확률을 0.04~0.2% 정도로 계산해놓고 있기도 했다.

육각형의 서늘함에 긁혀버린 건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건 몇 개 때문에 모양이 찌그러져 버린 건 차치하고 노골적인 조건들을 저항 없이 수용했다는 사실이 옆구리를 찔러서다. 사람을 급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게 육각형식 사고의 전제니까 어려서부터 평가받는 데 익숙해진 내 안에도 벌써 조건 몇 개는 자리했을 수도 있다. 애당초 육각형이 본론인 사람도 많고, 타인의 내면까지 알기란 나의 마음을 아는 것만큼이나 어려우니 적어도 육각형은 러프한 안전판이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솔직한 거다.

다만 육각형 과몰입을 경계해야 하는 건 다수를 자괴감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조건을 너그럽게 바꿔 10명 중 6명이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오고, 10명 중 6명이 자산 2~3억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조건이 하나씩 중첩될 때마다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육각형에 떳떳하지 않은 마음들은 가끔 술자리에서 알파 메일에 대한 선망으로 표출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돌아보면 지금도 과거에도 사람과의 좋았던 기억들은 육각형이 만들어준 건 전혀 아니었다. “결혼을 할까 말까 진지하게 생각하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해.” 신동엽의 이 말이 육각형식 사고에 대한 대안이 어느 정도 될 것 같다. 육각형이 학창시절 성적표를 넘어서게 두지 말고 내 행복의 본론은 어떤 모습인지 이번 주부터 그려보면 어떨까.

허정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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