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엔 홍수 막는 '지하 신전' 있다…1초에 수영장 1개 분량 배수 [인사이트 재팬]

2024. 7. 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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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석 도쿄 특파원

'보우사이치카신덴(防災地下神殿ㆍ방재지하신전)'이란 기묘한 이름에 이끌려 지난 10일 찾아갔던 도쿄 서북쪽 사이타마현(埼玉)의 수도권 외곽 방수로. 견학이 시작되는 곳엔 20여 명이 모여있었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으로 입장료를 내고 사전 예약한 사람들이었다.

무리에 끼어 '지하신전'에 들어갔다. 100여 단으로 구성된 철제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18m 높이의 기둥 59개가 나열돼 있는 길이 177m, 너비 78m의 거대한 공간을 보니 이곳을 왜 '신전'이라고 부르는지 실감이 났다. 어두컴컴한 지하 한복판에 우뚝 솟은 콘크리트 기둥들이 조명을 받고 서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지난 10일 방문한 일본 사이타마현의 수도권외곽방수로의 '방재지하신전'. 사진=정원석 도쿄특파원

지하신전이란 별명을 가진 이 공간의 진짜 이름은 조압수조(調圧水槽)다. 수압을 조절하는 물탱크를 뜻한다. 도쿄를 태풍·집중호우에 의한 홍수로부터 보호하는 방재 시스템의 일부다. 조압수조는 빗물터널을 통해 들어온 빗물의 수압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데, 지하에 모았던 빗물을 바깥으로 빼내는 배수의 마지막 단계다.

조압수조에 모인 물을 가스터빈으로 구동되는 거대한 펌프 4기를 이용해 인근 하천으로 보내면 도쿄만을 통해 바다로 간다. 초당 200㎥의 물을 배수할 수 있다. 매초마다 25m 수영장 1곳만큼의 물을 빼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지하신전 근처엔 수직으로 뚫린 구멍이란 뜻의 '다테코우(立坑)'라 불리는 시설이 있다. 지하 방수 시설로 들어온 빗물은 처음 저장하는 공간이다. 구멍의 직경은 약 30m, 깊이는 71m에 이른다. 우주왕복선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이 통째로 들어갈 수 있다. 관람객은 몸에 하네스(harness·추락방지를 위한 안전기구)를 착용하고 레일에 연결한 뒤 원형 이동로를 따라 돌아볼 수 있다.

하수구 역할로 지표면의 빗물을 빨아들이는 수직구멍. 사진=정원석 도쿄특파원


이 거대한 구멍의 아래로는 6.3㎞ 구간에 걸쳐 세계 최장 규모의 지하 배수터널이 있다. 기자가 방문한 이 이설은 30년 전 착공돼 2006년 최종 완공됐다. 건설 비용만 2300억엔(당시 환율로 약 2조3000억원)이 투입됐다. 방수로 건설 전후의 차이는 극명하다. 방재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도쿄 북부의 나카가와(中川)ㆍ아야세가와(綾瀬川) 하천 유역은 주변보다 낮은 '접시' 모양의 지형 탓에 예로부터 침수 피해에 시달려 왔다. 큰비가 내리거나 태풍이 오면 수만 채가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2002년 부분 개통한 이후 홍수피해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부분 개통 이후 18년간 이 시설을 통해 침수 피해 경감한 효과가 총 1484억엔(약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김영옥 기자


도쿄 도심 한복판에선 폭우로 불어난 빗물을 어떻게 관리할까. 도심에선 주로 하천 근처에 수위를 조절하는 저수조를 설치해 대응하고 있다. 하천 옆 지하에 저수조를 만들고 지하에는 터널을 만들어 배수 용량을 높였다.

기자가 방문한 묘쇼지가와(妙正寺川) 저수조는 도로 아래에 설치돼 있었다. 저수조 입구 철창엔 강바닥에서 보일법한 수초들이 걸려 있었다. 강 수위가 오를 때마다 저수조로 물이 빨려들어가면서 남겨진 흔적이었다. 저수조 부근에서 만난 주민 하라다 씨는 "전에는 태풍이 올 때마다 강물이 넘쳐 피해가 생겼는데, 최근 몇 년 간은 비가 많이 와도 범람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 도쿄에는 12개 하천의 수위를 조절하는 저수조 27개 중 지하 배수터널이 3곳 있다. 추가 설치도 진행 중이다. 현재 네리마구(練馬)의 시라코가와(白子川) 저수조와 나카노구(中野)에 있는 칸다가와(神田川) 저수조를 5.4㎞ 길이의 지하 터널로 잇는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에 완공되면 총 연장 13㎞의 거대한 빗물 터널이 생긴다. 공사를 맡은 건설사 관계자는 "완공되면 시간당 100mm의 국지성 집중 호우에도 대응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도쿄도심 내 나카노구에 위치한 하천 주변 수위를 조절하는 지하저수조의 모습. 사진=정원석 도쿄특파원


한국의 빗물 터널은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이 유일하다. 4.7㎞ 길이의 터널이 빗물을 가두는데, 총 1390억원이 투입돼 7년에 걸쳐 완공됐다. 한때 상습 침수구역이던 양천구 신월동과 강서구 화곡동 일대는 시설이 완공된 2020년 이후 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도시 홍수 예방에 효과적인 빗물 터널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2011년 7월 폭우에 우면산 산사태로 16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과 광화문 등 7곳에 대심도 배수터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도한 토목공사라는 비판,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막대한 공사비도 문제였다. 결국 후임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계획을 대폭 수정했고, 신월터널 1곳만 들어섰다.

2022년 재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상습 침수지역인 강남역과 도림천, 광화문 일대에 대해 2027년까지 대심도 배수터널 계획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동작구와 용산구 일대에도 2030년까지 터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사업 진척은 더딘 편이다. 서울시는 3개 터널의 총사업비로 1조2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2번이나 유찰됐다. 결국 예산을 증액한 뒤 지난 5월 입찰 업체가 나왔다.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라 올해 시작한다 해도 2028년 말에나 완공 가능하다.

일본처럼 인구가 대도시에 몰려 있고 극한 호우의 빈도가 늘어나는 한국도 일본의 수해 대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30년간 가장 많은 비가 내렸을 때를 기준으로 방수 시설을 만드는 게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요즘은 기후 변화로 이런 기준을 초과하는 비가 오고 있다”며 "특히 침수 피해가 되풀이된 강남은 배수가 어려워 지하 배수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쿄=정원석 특파원 ju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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