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상법 개정 안 할 수 있나” [편집장 레터]
“Most Korean stocks are uninvestable without 상법 개정.”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이 최근 어느 외국인 투자자에게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두산그룹 사업 재편 후폭풍이 장난 아닙니다. 1000만명 넘는 동학개미는 뿔이 날 대로 났고, “이러니 국장 떠나 미장 가지” “이러니 상법 개정 안 할 수 있나” 비난의 목소리가 넘쳐납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 빠르게 “계열사 간 합병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현재 상장회사가 합병하면서 합병가액을 계산할 때 주가만을 기준으로 하죠. 개정안의 핵심은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병가액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계열사 간 합병을 시도하는 상장사 주주가 해당 상장사나 상대 법인의 특수관계인일 때는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내용도 담았죠. 합병가액이 불공정하게 결정돼 투자자가 손해를 입게 되면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이들이 연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고요.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자’는 상법 개정안과 일부분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의결권 제한 얘기가 생뚱맞게 나온 것도 아닙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소수주주 과반결의제(Majority of Minority·MoM)’ 도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왔습니다. 합병, 분할, 포괄적 주식교환 등 지배주주(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경우 지배주주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내용입니다. 의사 결정이 지배주주만이 아닌 전체주주 이익에 부합하도록 추진하자는 취지죠. 기업 입장에서야 뒷목 잡고 쓰러질 내용이지만, 심심하면 반복되는 두산 같은 기막힌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반대하기가 머쓱합니다.
도대체 두산이 뭘 어쨌길래 이러냐고요?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아래 있는 두산밥캣을 떼어내어 두산로보틱스로 옮기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됩니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존속 사업법인과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신설회사를 1 대 0.13 비율로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고, 마지막으로 개인주주가 보유한 두산밥캣 주식을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바꾸는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취득한 뒤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한다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과정에서 1 대 0.13 비율이 맞냐, 1주당 0.63주 교환이 맞냐가 논란의 핵심입니다. 다수 전문가가 이번 개편이 실행되면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 가치가 훼손될 것으로 봅니다. 로보틱스 주식을 68% 소유한 지주사 ㈜두산만 이득을 보는 결과라는 분석도 덧붙여지고요.
두산뿐이겠습니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SK㈜와 SK C&C 합병 때도 같은 문제로 시끄러웠죠. 삼성이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다른 기업은 같은 짓을 못하겠거니 했던 예상은 바보 같은 예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제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오래전 아스라한 기억’쯤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9호 (2024.07.24~2024.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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